보훈처가 의사자(義死者) 유족의 국립묘지 위패 봉안 신청을 거절하면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면 위법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1부(부장 심준보 김종호 이승한)는 최근 A씨가 국가보훈처장을 상대로 제기한 국립묘지 안장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1994년 아들 B(사망 당시 17세)군을 하늘로 떠나보냈다. B군은 물놀이 도중 튜브를 놓쳐 허우적거리는 친구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보건복지부는 2005년 B군을 의사자로 인정했다. 의사자는 직무 외 행위로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한 사람을 국가 차원에서 예우하는 것으로, 유족이 보상금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
A씨는 2019년 보훈처에 "아들의 위패를 국립묘지에 봉안해달라"고 신청했지만, 보훈처는 이유를 밝히지 않고 거절했다. A씨는 보훈처와 여러 관청을 돌아다녔지만, 어디에서도 명확한 사유를 들을 수 없었다.
A씨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청구한 행정심판까지 기각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보훈처가 B군과 유사한 사례의 의사자를 국립묘지에 안장한 적이 있다는 취지였다.
1심 재판부는 보훈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구조행위의 상황과 방법, 피구조자와의 관계 등을 살펴보면 B군의 희생정신과 용기가 항구적으로 존중되고 사회의 귀감이 되도록 하는 게 합당한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A씨는 항소심에서 "보훈처가 거절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관청에서 납득할 만한 이유를 들었다면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항소심은 A씨의 호소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보훈처가 △의사자 국립묘지 안장 심의 기준을 외부에 공표하지 않았고 △안장대상 심의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A씨는 보훈처 결정에 하자가 있었는지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보훈처가 법정에서 밝힌 거절 이유에 대해서도 "최근 5년간 의사자 국립묘지 안장 비대상 결정 사례와 비교해도 가장 부실하다"며 "심의위원회 판단도 제대로 된 논의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가기관은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므로, 처분의 명확한 이유와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며 보훈처를 질책하기도 했다.
다만 이번 판결로 B군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은 아니다. 법조계 관계자는 "A씨가 재차 아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신청한다면 보훈처가 꼼꼼히 살펴보고 이유를 설명해주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