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 개인정보를 많이 모았는데, 이 정보가 어떻게 처리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유출될지도 모르죠."
유엔 시민적·정치적권리위원회(자유권위원회) 첫 한국인 위원인 서창록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은 지난달 23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에서 가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부가 감염병예방법에 근거해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인권 침해 사안이 벌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코로나19 확진자로서 겪은 경험에서 나온 주장이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였던 2020년 3월 감염돼 '성북구 13번 확진자'로 불리며 24시간 방역당국과 의료기관의 감시를 받았다. 자신의 개인정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퍼지는 것도 똑똑히 지켜봤다.
서 원장은 최근 출간한 저서 '그래도 나아간다는 믿음'에서 개인정보 유출 우려에 대해 "디지털 시대에 맞는 인권 담론이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정보통신기술(ICT) 덕에 'K방역'이란 성과를 냈지만 이면에는 확진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 첫 원숭이두창 확진자가 나왔다. 코로나19 초기 혐오 정서가 다시 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피해를 줄 만한 사람을 배제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지만, 코로나19로 혐오가 혼란을 키운다는 걸 배웠다. 이태원클럽발 확산 때를 생각해 보자. 혐오 정서가 퍼지면 사람들은 숨기 마련이다. 인권 문제가 일어나는 건 디지털 기술과 관련 있다. 기술 덕분에 빠른 추적·검사가 가능했지만 불필요한 정보까지 가져가 사생활 침해를 당했다. 나도 감염돼 경험했다."
-디지털 시대에 발생하는 인권 문제란 무엇인가.
"디지털 기술에 현혹돼 인권 침해가 일어나는지 모르고 지나친다. 아직 이에 대한 성찰과 논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도쿄올림픽 양궁 경기를 떠올려 보자. 안산, 김우진 등 선수들의 안정된 심박수에 사람들이 박수를 쳤는데, 사실 이건 선수들의 개인정보다. 단순히 심박수를 넘어 심리 상태도 파악할 수 있는 개인정보가 아무렇지 않게 생중계됐다."
-보완할 대책은 없을까.
"충분한 인권적 검토 없이 만들어진 감염병예방법을 현 시대에 맞게 인권 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 수집한 정보를 어떻게 다룰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위기 상황이라고 해도 개인정보의 주체는 나 자신이어야 한다. 이태원클럽발 확산 때 서울시가 통신사에 개인정보 제공을 요청했는데, 지금 이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최근 원숭이두창 첫 확진자가 나왔을 때 방역당국은 성별도 공개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초기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졌다. 확진자에 대한 인권 침해 지적에 바뀐 것이다. 다만 감염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은 여전하다. 내가 감염된 뒤 인권 문제를 거론하겠다고 했을 때 한국과 외국 지인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외국에선 용기 있다며 응원했지만, 한국에선 '감염된 걸 숨겨야 한다'고 하더라. 이런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확진자들은 계속 인권 침해를 당할 수 있다. 인권이란 게 한 번에 좋아질 수 없다. '나만 보지 말고 우리의 미래를 보자'는 인권 교육으로 조금씩 바꿔 나가야 한다."
-최근 출간한 저서에서 '백신 민족주의'를 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 간 백신 격차로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이 자국 중심적으로 백신을 확보하다 보니 개발도상국은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변이 바이러스가 나왔고 다시 전 세계로 퍼졌다. 지난해 12월 나이지리아가 선진국에서 받은 백신을 대량 폐기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백신을 준 선진국의 이기주의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지금이라도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제약사들이 오미크론 백신을 개발 중인데, 새 백신 분배는 인권 보호 측면에서 달라져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편 질병관리청은 개인정보 처리 문제와 관련해 "감염병예방법에 근거해 수집한 개인정보는 규정에 따라 권한이 있는 사람이 관리한다"며 "보안망에서 전산화로 관리하고 일정 기간 자동 삭제해 유출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