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와 격전을 벌였던 동부 전략요충지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한 달 가까이 러시아군의 공세를 힘겹게 막아왔지만, 병사가 하루에도 100명 넘게 숨지는 등 극심한 소모전 양상을 보이면서 추가 희생자 발생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4개월만에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던 ‘돈바스 장악’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됐다.
2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 현지 지휘관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주(州) 주지사는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철군하라고 명령 받았다”며 “몇 달간 타격을 받아 산산조각이 난 진지에 단순히 잔류를 목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남게 된다면 전사자 수만 늘어날 수 있다”며 소모전을 더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아조우스탈 제철소에 갇혀 80일간 최후의 항전을 벌였지만, 불어나는 희생에 끝내 항복을 선언해야만 했던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근 동부 격전지에서만 우크라이나 병사가 하루 100명 이상 전사하고 부상자도 500명씩 발생하고 있다.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철수한 우크라이나군은 다른 진지로 이동해 러시아군과 전투를 이어갈 전망이다.
우크라이나의 이번 결정으로 러시아는 ‘돈바스 해방’이라는 당초 전쟁 목표에 더 근접하게 됐다.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우크라이나 병력이 철수하면 러시아가 루한스크주를 사실상 점령하는 까닭이다. 이 경우 현재 절반가량 장악한 이웃 도네츠크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이 사실상 돈바스 전투에서 승기를 잡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러시아는 올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북부 공략에 실패하자 동부 지역으로 점령 표적을 바꿨다. 이달 초부터는 세베로도네츠크와 이웃 소도시 리시찬스크를 상대로 혹독한 폭격을 이어왔다. 한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무차별 폭격을 퍼붓고 도시를 초토화시키는 것은 러시아군의 전략이다. 이 때문에 세베로도네츠크는 일찌감치 도시 기능을 잃었다. 하이다이 주지사는 “도시의 모든 기반 시설이 완전히 파괴됐다”며 “주택 90% 이상이 포격을 맞았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80%는 붕괴 정도가 심해 아예 복구가 불가한 수준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