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골자로 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한 지 하루 만인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혼선을 빚었다. 고용부 장관이 직접 발표한 내용을 대통령이 부정한 모양새가 된 탓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으로 불필요한 혼선이 이어지면서 대통령실과 부처 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발단은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새 정부의 주 52시간제 개편에 노동계의 반발이 심한 것 같다'는 질문에 "내가 어제 보고를 받지 못한 게 언론에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아침에 확인해 보니 고용부에서 발표한 것이 아니고, (추경호) 부총리가 고용부에 민간연구회나 그런 분들 조언을 받아 노동시간 유연성에 대해 검토해보라고 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그러나 16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주 52시간제 손질을 공식화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도 전날, 현재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 근로시간을 노사 합의로 '월 단위'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노동정책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이 이를 하루 만에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하자, 고용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보고받지 못했다"는 윤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따르면, 부처가 '대통령 패싱'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과 고용부는 이에 고용부 장관의 발표 전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을 통해 대통령에게 전달된 사안임을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의 신중치 못한 언급이 '엇박자 논란'을 자초한 셈이었다. 그러자 대통령실이 뒷수습에 나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취재진과 만나 "대통령께선 어제 고용부 발표가 최종 보고(발표)라고 생각하신 듯하다"고 해명했다. 고용부 장관 브리핑 내용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정부의 정책 방향이 최종 결정됐다는 취지로 오해했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이 오전 신문을 보고 정부의 최종 결정이 이뤄진 걸로 생각하신 것이지 고용부의 브리핑 보고를 못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실과 고용부는 오히려 해명 과정에서 언론을 해프닝의 원인으로 지목해 입길에 올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어제 발표가 새로운 내용이 아닌데, 아침 신문에 일제히 보도되니 대통령은 '이게 최종안인가 보다'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했다. 고용부는 "주 52시간제 기준을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바꾸는 내용은 자료에 '가령'이란 단서를 달아 예시 중 하나로 제안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 발언이 주 52시간제 개편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간연구회 조언을 받아서 검토하라고 한 사안"이라는 윤 대통령의 설명 자체가 민간과 노조 등 각계 의견을 듣고 절충할 여지를 남긴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도 모르는 설익은 정책 발표야말로 국기문란"이라며 "국민 불안을 가중시킨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의 공식 입장도 아닌 것을 무책임하게 발표했다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날 경찰을 향해 대통령이 재가하지 않은 인사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국기문란'이라고 격노했던 윤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