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에 10개 솔드요!"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외환 딜러가 한 손에 수화기를 든 채 급박하게 외쳤다. '1.1'은 달러 대비 원화 환율 '1,301.1원'을 마지막 두 자리만으로 줄여 부른 것이고 '1개'는 100만 달러를 뜻한다. 즉, 한 고객(기업)이 1,301.1원의 환율로 미국 달러 1,000만 달어치를 사겠다고 전화 주문을 낸 것이다. 대부분의 거래가 디지털화된 금융 시장에서 여전히 기업과 은행을 상대로 구두 거래를 하고 있는 곳이 외환 딜링룸이다.
이날 외환시장 개장 초반이던 오전 9시 9분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돌파했다. 전일보다 2.7원 오른 수치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에 1,300이라는 숫자가 깨지자 달러를 사거나 팔겠다는 기업 고객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딜러들은 각자 자리에 설치된 5~6개의 모니터에 거래창, 외신 뉴스창 등을 띄워놓고 번갈아 살피며 큰 소리로 '솔드'를 외쳤다.
1,300원이라는 천장을 뚫은 환율은 1,302.8원까지 올랐다 10시경 1,299.40원으로 떨어졌다. 이후 종일 1,300원대를 오르내리고, 딜링룸에선 딜러들의 긴박한 외침과 탄성, 웃음과 한숨이 교차했다. 결국 이날 환율은 1,301.8원에 마무리됐다.
다음 날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298.2원으로 전날 종가보다 3.6원이 내렸지만 시장에서는 향후 1,350원대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미 연준의 금리 인상에 원화 약세 흐름까지 겹치면서 달러 강세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해석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 물가 상승 등 해결되지 않은 변수가 적지 않아 우리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딜러들은 이 같은 환율 상승 분위기를 통해 시장의 불안함을 감지한다고 말한다. 환율은 곧 그 나라 시장 경제에 대한 신뢰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이날 한 딜러는 "1,300원이라는 상징적인 숫자가 뚫렸다는 것은 시장에 공포가 지배적임을 의미한다"면서 "시장 상황이 많이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루빨리 물가가 떨어지고 시장 불안이 사라졌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환율의 심리적 마지노선 '1,300원'이 깨진 23일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의 풍경을 사진으로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