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곳간은 비어 가는데 '감세 경쟁'이 치열하다. 재정 건전성을 강조한 정부·여당은 물론, 이전 정부에서 증세를 주도했던 야당도 가세했다.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이후 발표된 각종 대책으로 세수가 10조 원 넘게 줄어들 전망인 데다 경기 둔화 가능성까지 확대되고 있어 ‘세수 펑크’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정부·국회에 따르면, 정치권은 휘발유·경유 가격 급등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앞다퉈 유류세 추가 인하에 나서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정부안은 언 발에 오줌 누기”라며 “최소 50%까지는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19일 정부가 유류세 인하율을 7월부터 확대(30→37%)하기로 한 지 불과 이틀 만이다.
그러자 국민의힘 물가민생안정특별위원회도 같은 날 유류세 최대 인하폭을 50%까지 늘리는 개정안 마련 검토로 맞불을 놨다.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유류세를 최대 100%까지 감면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했다.
고물가 충격에 직면한 민생을 위해선 일부 감세가 불가피하지만, 문제는 세수 부족이다. 이미 유류세 20% 인하 조치로 1~4월 국세수입 중 교통세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조1,000억 원 줄었다. 인하 폭이 30%로 확대된 5~6월엔 수천억 원의 세수 감소가 전망되고, 7월부터 연말까지 5조 원의 교통세가 덜 걷힐 것으로 추산됐다. 현재 계획된 유류세 인하 조치로만 8조 원 안팎의 세수가 준다는 뜻이다. 인하율이 50%로 높아지면 감소폭은 더욱 커지게 된다.
정부가 이미 감세안을 쏟아낸 상황에서 추가 세제 완화는 재정 운용에 상당한 부담을 줄 가능성이 높다. 법인세 최고 세율 인하(25→22%)로 2조~4조 원의 법인세수 감소가 예고된 상태다. 게다가 올해 1가구 1주택자의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 지난해 공시가격으로 과세표준을 구하고, 공정시장가액비율도 낮추기로 했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2021년 공시가격을 쓸 경우 재산세는 8,200억 원, 종부세는 1,500억 원 줄어든다. 여기에 공정시장가액비율 85%를 쓰면 종부세 감소규모는 1조1,400억 원까지 늘어난다. 정부가 해당 비율 60%를 적용하기로 한 만큼 보유세 세수 감소는 2조 원을 웃돌 공산이 높다.
추경 이후 나온 유류세·법인세·보유세 완화 조치로 세수가 10조 원 넘게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2차 추경으로 올해 걷힐 초과세수를 가불해 쓴 만큼 세수가 예상보다 덜 걷힐 경우 빚을 내 메워야 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초과세수 예측 이후 각종 감세안이 발표됐고 하반기 경기 둔화까지 겹쳐 세수가 덜 걷힐 가능성이 높다”며 “부족분은 적자국채로 채워야 해 나랏빚은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4월 기준 국가채무(1,001조 원)는 사상 처음 1,000조 원을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