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마어마한 사람이었습니다. 용감하고, 고결하고, 관대했습니다. 그는 진짜 애국자였고 이 나라(미국)를, 그리고 한국을 사랑했습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州)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6ㆍ25전쟁 참전 영웅 고(故) 윌리엄 웨버 미 예비역 육군 대령 안장식. 지난 4월 9일 향년 97세로 별세한 웨버 대령의 생전 업적을 기리는 군목의 소개가 이어지자 자리는 숙연해졌다.
미군 의장대의 조총 예포 21발 발사, 진혼 트럼펫 연주에 이어 운구된 고인의 관을 덮었던 성조기를 미군 병사가 접어 고인 가족에게 전달하자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이름도 모르는 한국인을 지키기 위해 6ㆍ25전쟁에서 치열하게 싸우다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고, 전역 후에는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회장을 맡아 한미동맹 강화에 앞장섰던 ‘참군인, 한미동맹 상징’의 마지막을 기리는 하늘의 눈물이었다.
1925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웨버 대령은 1944년 미 육군에 입대, 2차 세계대전을 치렀다. 1950년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미 육군 187 공수여단 소속 대위로 인천상륙작전 등에 참여했다. 하지만 1951년 2월 원주전투에서 수류탄과 박격포탄을 맞고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는 치명상을 당했다. 그는 심각한 장애에도 수술과 재활을 거쳐 1년 뒤 현역으로 복귀했고 1980년 대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미군에서 근무한 불굴의 용사였다.
전역 후 참전용사기념재단 회장으로 24년간 일하며 미국에서 6ㆍ25전쟁을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워싱턴 내셔널몰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 ‘19인의 용사상’을 세우는 데 기여했고 다음달 27일 제막식이 거행되는 추모의 벽을 만드는 작업에도 힘을 보태왔다. 추모의 벽에는 6ㆍ25전쟁 미군 전사자 3만6,595명, 한국군 지원부대(카투사) 전사자 7,174명 등 총 4만3,000여명의 이름이 모두 새겨져 있다.
안장식에 앞서 웨버 대령 유족은 고인의 운구 차량과 함께 추모의 벽 건설 현장을 찾기도 했다.
이날 안장식에는 폐암 투병 중인 고인의 아내 애널리 웨버 여사와 며느리, 손녀 등 가족, 한국전쟁 참전 미군 베테랑, 재미 한국 재향군인, 한미동맹재단 관계자, 조태용 주미대사와 이경구 주미대사관 국방무관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알링턴 국립묘지 측은 7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이용한 운구, 의장대원의 조총 예포 발사 등으로 최고의 예우를 다했다. 웨버 대령의 관에는 성조기와 함께 태극기가 함께 담겼다.
조태용 대사는 웨버 여사에게 직접 고마움도 표시했다. 그는 “웨버 대령의 뜻을 기려 한미동맹이 미래세대에도 계속 튼튼히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안장식에 참석했던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도 “웨버 대령은 한국전쟁에서 피를 흘려가며 싸웠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려 했다”며 “우리 모두 그가 한 노력을 새기고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