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춤추게 한 탄소의 노래

입력
2022.06.23 14:00
15면
로버트 헤이즌 ‘탄소 교향곡'

편집자주

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 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아직도 살 만하고 아름다운 지구나 잘 보존합시다!”

‘인간이 외계 행성에 갈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놓고서 201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지금은 80대가 된 과학자 미셸 마요르는 이렇게 답했다. 1995년에 외계 행성을 처음으로 발견한 공으로 노벨상까지 받은 사실을 염두에 두면 다소 김이 빠지는 대답이었다. 그는 아예 쐐기를 박듯이 “외계 행성으로 이주하는 일은 미친 짓”이라고도 덧붙였다.

로버트 M. 헤이즌이 쓴 ‘탄소 교향곡’(뿌리와이파리 펴냄)을 읽으면서, 이 일화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80억 명 가까운 인구가 아등바등 부대끼며 사는 이 지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작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면서 말이다. 실제로 과학책 가운데 독자에게 제일 인기 없는 분야도 지구과학이다.

개인적으로 ‘탄소 교향곡’을 올해(2022년) 상반기에 나온 수많은 과학책 가운데 제일 의미 있는 책으로 꼽고 싶다. 이 책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제목보다는 부제에 주목해야 한다. ‘탄소와 거의 모든 것의 진화’라는 부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약 138억 년 전 우주의 탄생(빅뱅)과 45억 년 지구의 역사를 탄소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서술한다.

‘아!’ 하는 탄성이 나올 만한 몇몇 대목을 살펴보자. 탄소는 물을 구성하는 수소와 산소 다음으로 비중이 큰 우리 몸의 구성요소다. 그렇다면, 이 탄소는 어디서 왔을까. 저자는 빅뱅의 순간에도 탄소가 만들어진 사실을 상기하면서, 우리 몸속 탄소 가운데 일부는 138억 년의 역사를 가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사정도 놀랍다. 이 반짝반짝 빛나는 탐욕의 돌덩어리가 (연필심의 재료인) 흑연처럼 탄소로만 이뤄졌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 다이아몬드가 수백 킬로미터에서 수천 킬로미터 지하(맨틀)에서 만들어지고, 이런 사정 때문에 다이아몬드에 포함된 공기 방울이나 이물질(다른 광석)이 지구 밑을 탐구하는 유용한 단서라는 사실은 어떤가.

지구 밑에 갇혀 있던 탄소(화석 연료)를 우리가 무분별하게 태우면서 지구 가열(Global Heating) 같은 심각한 문제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지구는 이렇게 공기를 데우는 온실가스(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수단도 제공한다. 아라비아 남동부 오만에 많은 양이 매장된 광물 오피올라이트는 빠른 속도로 “인간이 지난 수백 년 동안 생산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일 수 있다.

반도체부터 의약품까지 쓰일 가능성을 모색 중인 차세대 신소재 그래핀도 탄소가 인류에게 안겨준 또 다른 선물이다. 연간 1만 건이 넘는 논문이 쏟아지는 이 분야에서 앞으로 인류를 놀라게 할 어떤 혁신이 이뤄질까. 저자가 맛보기로 언급한 몇 가지 사례만으로도 입이 딱 벌어진다. (처음 들어본 독자라면, ‘그래핀’을 꼭 기억하라! 앞으로 팔자를 고칠 수도 있다.)

여기까지 읽고서도, 탄소를 주인공으로 한 이 책의 부제 ‘거의 모든 것의 진화’에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이제 제목이 ‘탄소 교향곡’인 이유를 설명할 차례다. 저자 로버트 헤이즌은 지구의 역사를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로 정리한 ‘지구 이야기’(뿌리와이파리 펴냄)로 과학책 팬들을 열광하게 한 지구과학자다.

지금은 70대 현역으로 온갖 분야의 지구과학 연구를 지원하고 융합하는 역할을 하는 헤이즌은 첼리스트 요요마와 협연할 정도로 유명한 수십 년 경력의 트럼펫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가 이 책을 흙, 공기, 불, 물의 4악장으로 짜인 ‘탄소 교향곡’으로 구성한 이유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솔깃할 만한 일화나 정보도 숨어 있다. 예를 들어 1975년 2월에 당시 학부생이었던 요요마가 죽을 뻔했던 일도 그 가운데 하나다. 궁금하면 책을 읽어보시길!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