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른들의 이야기'는 수위가 높고 자극적이어야 할까.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이 같은 물음에서 출발했기에 은근하면서도 잔잔한 감정의 흐름을 담아낸다. 그간 청불(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에 특화된 듯 보였던 박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선입견을 깨부쉈다.
그렇다고 영화의 짜임새가 느슨해 지루함을 주진 않는다. 오히려 더욱 농밀한 감정의 실타래가 얽혀있는 느낌이다. 작품의 전반부는 서스펜스가 장식하고 후반부엔 멜로를 강조하며 촘촘하게 서사를 쌓아올린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한국 영화다.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뿌연 안개 속에서 펼쳐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긴장감을 형성한다.
이 작품은 인생을 알만큼 알고 파고를 넘나들어본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과 인생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두 주인공 역시 많은 부분에서 능숙하지만은 않다. 터져 나오는 감정을 애써 부여잡아보지만 관객들에게도 마음의 요동이 전해진다. 의심과 관심을 오가는 관계 변화나 수사극과 멜로 드라마의 조화도 신선하다.
'올드보이' 미도부터 '아가씨' 히데코와 숙희까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여성 주인공을 탄생시켰던 박찬욱 감독은 이번에도 기어코 관객들이 서래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피의자 신분의 중국인 서래를 연기한 탕웨이는 어눌한 한국어와 깊은 눈빛으로 완벽하게 캐릭터에 스며들었다.
박찬욱 감독은 지난 21일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 "우리가 젊을 땐 자기감정을 다 드러내고 표현해 가면서 살지만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면에서 솔직해지기 어려워진다고 볼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 자기의 처지에 따라서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게 많고 참아야 할 것도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며 "그런 형편에 놓인 두 사람이 어떻게 하면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기감정을 전달할까. 참기가 힘든데 이 감정을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 감출까를 고민하는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탕웨이는 자신이 분석한 서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때론 숨기는 게 더 큰 표현으로 다가갈 것이라 생각했다. 연기를 할 때, 감정을 가지고 안으로 더 들어가는 것으로 표현을 하려 했다"고 밝혔다. 형사를 연기한 박해일 역시 "어른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감독님 말씀에서 배우가 표현해야 할 감정의 톤들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극 중 서래는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나의 사랑은 시작됐다"고 말한다. 박 감독은 "사랑이라는 게 어느 순간 라이터 불을 켜듯 확 생기는 게 아니라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으며 서래의 이 같은 대사가 탄생한 배경을 설명했다.
박찬욱 감독에게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안긴 '헤어질 결심'은 오는 29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