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담배에서 니코틴 성분을 대부분 제거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흡연으로 인한 사망을 줄이고 담배 중독을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담배회사들은 즉각 반발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담배에 함유된 니코틴을 중독되지 않는 수준까지 줄이는 규정 도입을 추진하겠다”며 “니코틴 최대 허용 수치를 규제하는 '담배 제품 표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규정은 수입산 담배에도 적용된다. 올해 초 바이든 대통령은 향후 25년간 암 사망률을 절반으로 낮추겠다고 했는데, 이번 정책은 그 공약의 일환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1998년 담배회사들이 흡연 관련 의료비 2,000억 달러(약 261조 원)를 주정부에 배상하기로 약속한 법적 합의 이후로 흡연 규제와 관련한 가장 큰 진전”이라고 평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조사 결과, 2020년 기준 미국 성인의 12.5%인 3,080만 명이 흡연자로, 매년 48만 명이 흡연과 연관된 질병으로 조기 사망한다. 담배로 인한 건강 관리 비용과 생산성 손실 비용은 연간 3,000억 달러(약 391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니코틴은 그 자체로는 암, 심장병, 폐 질환을 일으키는 성분은 아니지만 강력한 중독을 유발해 결과적으로 흡연자가 담배에 들어 있는 독성 물질을 들이마시게 된다. FDA는 2018년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 발표한 연구에서 니코틴 함량을 중독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으로 줄이면 5년 안에 흡연자 1,300만 명이 담배를 끊을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장기적으로는 2100년까지 흡연율을 1.4%로 낮추고, 담배 관련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를 800만 명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정책이 구체화되고 현실화되기까지 걸림돌이 적지 않다. 담배회사들은 니코틴 감축 조치가 금연에 효과적이지 않을뿐더러 애연가들이 니코틴 고함량 담배를 구하기 위해 밀수와 암시장에 의존할 위험이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담배 재배 농가와 소매업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논리도 앞세운다. 말보로 제조사 필립모리스의 모회사인 알트리아는 “성인 흡연자들에게서 담배를 빼앗는 것보다 FDA에서 승인받은 금연 제품 관련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생존을 위협받게 된 담배회사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정책을 좌초시키거나 시행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2009년 FDA가 담뱃갑에 흡연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키는 사진을 삽입하도록 의무화하자, 담배회사들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소송을 내 항소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아낸 적도 있다. 담배회사들이 막강한 로비력을 발휘해 주요 담배 생산지를 지역구로 둔 의원들을 압박하면 11월 중간선거에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