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3시 59분 59초. 긴장 속에 울려퍼진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전남 고흥군 봉래면 마치산 능선 너머로 누리호가 화염을 뿜으며 솟아올랐다.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장에서 현장 프레스센터까지 거리는 약 3㎞. 하지만 300톤에 달하는 누리호 1단 클러스터링(엔진 조합) 엔진의 위력은 프레스센터까지 전달됐다. 프레스센터 앞 높이 50m 초대형 국기봉이 미세하게 떨며 쇳소리를 냈다.
붉은빛을 내며 하늘을 수직으로 가른 누리호는 발사 2분 3초 만에 1단 로켓을 떨궈냈고, 바로 2단 로켓에 불을 붙이며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하늘로 쭉쭉 치고 올라가는 누리호는 이내 연기 사이로 사라졌고, 사람들의 눈이 보이지 않는 우주 공간(고도 100㎞)으로 거침없이 솟아올랐다. 발사 장면을 보기 위해 전망대에 모인 시민들은 물론 누리호 연구원들도 숨을 죽이고 누리호가 우주에서 보낼 신호를 기다렸다.
누리호가 보낸 교신 결과는 '성공'을 가리켰다. 예정 시각, 예정 고도에 거의 오차 없이 성능검증위성을 고도 700㎞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대한민국 우주의 하늘이 활짝 열렸다"며 누리호 성공의 의미를 평가했다.
누리호는 예정된 시퀀스(장면이 전개되는 차례)에 착착 맞게 1, 2, 3단 분리를 완료했다. 발사체는 이륙 123초 만인 오후 4시 2분 3초쯤 고도 62㎞에 올라 1단을 분리하고 2단 로켓을 점화했다. 발사 227초 뒤인 오후 4시 3분 47초에는 공기 마찰이 거의 없는 고도 202㎞에 진입, 이제 필요 없어진 위성 보호 덮개(페어링)를 분리했다. 2단을 지구 쪽으로 떨궈내고 가장 작은 모습이 된 누리호는 발사 후 오후 4시 4분 29초(발사 269초) 273㎞ 고도에서 마지막 남은 3단 엔진에 불을 켰다.
3단 로켓은 600여 초 동안 추력을 발휘하며 누리호를 목표 고도인 700㎞까지 밀어올렸다. 이 단계는 지난해 10월 1차 발사 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던 지점이다. 당시 3단 엔진은 목표 속도(초속 7.5㎞)에 도달하지 못하며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데 실패했다. 이번에 항공우주연구원은 헬륨탱크 고정장치 등을 강화해 2차 발사에 나섰는데, 그 후속조치가 완벽하게 이뤄지며 지난번 한계를 떨쳐냈다. 발사 후 875초 성능검증위성 분리, 945초 위성모사체 분리가 완료됐다.
분리 당시 속도는 초속 7.5㎞. 오후 4시 42분쯤 남극 세종기지와 교신을 진행한 결과 분리 직후 성능검증위성의 텀블링(인공위성이 제대로 자세를 잡기 전에 회전하는 것)은 안정적이었다. 배터리도 완충 상태를 이상 없이 유지하고 있었다.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본부장은 "발사 시퀀스가 당초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긴 했지만, 위성의 궤도 안착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문제없이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날은 하늘도 누리호의 편이었다. 1단 산화제탱크 레벨센서 문제로 발사가 연기된 뒤 21일로 발사일을 정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날씨 예보는 낙관적이지 않았다. 오전엔 비 예보가 있었고 바람과 낙뢰도 걱정이지만 장마전선 북상이 늦어졌다. 그러나 실제론 이날 오후 1시부터는 맑고 바람 없는 날씨가 이어졌다. 오태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은 "발사일을 특정할 때까지만 해도 기상의 불확실성은 있었지만 그 불확실성이 좋은 쪽으로 풀렸다"며 "바람도 잦아들고 낙뢰 위험도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누리호 발사 성공은 1993년 6월 최초의 과학관측 로켓 '과학 1호'가 발사된 지 꼭 29년 만의 일이다. 이종호 장관은 "한국이 다른 나라의 발사장이나 발사체를 빌리지 않고도 우리가 원할 때 우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누리호 꼭대기에 실려 우주 궤도에 오른 성능검증위성은 이후에도 수차례 지상국과 교신하며 자신의 상태를 지구에 알리게 된다. 궤도에 오른 지 8일째 되는 29일부터 4대의 큐브위성을 이틀에 하나씩 사출(분리)할 예정이다. 고정환 본부장은 "이게 끝이 아니고 앞으로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며 "발사 경과를 세밀하게 분석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해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