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앞마당' 남미에서 '좌파 물결' 거센 세 가지 이유는?

입력
2022.06.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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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등 잇딴 좌파 집권… ‘핑크 타이드 시즌2’ 
‘시즌1’과 달라… 기후변화ㆍ소수자 권리 등 집중 
새로운 차원의 중남미 통합 추진 동맹 출현 전망

친미 국가였던 콜롬비아에서 좌파 정권이 탄생한 것은 '핑크 타이드(분홍 물결·남미 각국에서 좌파가 집권하는 현상)'의 부활을 예고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중남미 12개국 중 10개국의 정권을 좌파가 잡아 반미 연합을 형성한 것을 1기 핑크 타이드로 부른다면, 최근 몇 년 사이 2기 핑크 타이드가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8년 멕시코, 2019년 아르헨티나, 2020년 볼리비아, 지난해 페루와 칠레에서 연달아 좌파 정권이 등장한 데 이어 올해 10월 브라질 대선에서도 좌파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

핑크 타이드의 귀환이 의미하는 바를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현지시간) 크게 3가지 틀에서 분석했다.

①코로나19 팬데믹 직격, 보수 기득권에 거부감

새로운 핑크 타이드의 출현에는 코로나19 대유행이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뜩이나 취약했던 남미 경제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2020년 이후 남미에선 한 해 약 1,200만 명이 중산층에서 밀려났다. 먹고살기가 팍팍해진 유권자들은 보수 기득권 세력을 불신하기 시작했고, 좌파 세력을 대안으로 택하고 있다.

WP는 "좌파 게릴라 출신인 구사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의 탄생은 감염병이 남미 정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라고 했다.

중남미의 좌파가 극단적 반미 투쟁에 매몰되는 대신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 힘을 쏟은 것은 득표 확장력을 키웠다. 각국 좌파 정치 세력은 에너지 전환과 녹색성장을 통한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장했다.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등 페미니즘에도 친화적 태도를 보였다. 베네수엘라 등 전통적 좌파 정권이 석유경제에 기반한 남성 우월주의를 고수하는 것과 대비됐다.

②기후변화, 성소수자, 페미니즘... 변화에 민첩 대응

좌파들이 '가톨릭 자장'에서 벗어나 사회 변화를 읽으려 한 점도 핑크 타이드의 동력으로 꼽혔다. 보수 가톨릭 교리는 임신 중단(낙태)을 여전히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지만, 멕시코와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등에선 잇따라 ‘낙태 비범죄화’가 조건부로 이뤄졌다. 칠레는 지난해 동성 결혼을 허용했다. 콜롬비아 법원은 지난달 안락사를 일부 허용했다.

중남미 좌파 세력은 공동의 가치 추구를 위한 동맹 형성도 추진하고 있다. 페트로 대통령 당선인은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재집권한다면) 브라질과 진보 동맹을 구상중”이라고 올해 초 WP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③미국, 러ㆍ중 패권경쟁 시각 접근... 남미서 영향력 ↓

‘핑크 타이드'의 부활은 남미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WP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이란, 북한 등 다른 지역 문제에 몰두하느라 남미에서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비영리 단체인 라틴아메리카 워싱턴사무소(WOLA)의 아담 이삭슨 국장은 “미국은 오랫동안 러시아ㆍ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염두에 둔 이른바 ‘냉전 2.0’의 시각에서 남미를 대하면서 장악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미국이 맞춤형 대외정책을 펼치지 못하면서 중남미에서 힘을 쓰지 못하게 됐고, ‘핑크 타이드’ 부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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