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인기 전문직을 꼽으라면 단연 의사가 아닐까 싶다. 의사 지망생들에게 왜 의사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목숨을 다루는 사명감을 꼽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명을 가장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흉부외과는 갈수록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흉부외과 전문의는 관상동맥ㆍ대동맥 등 심혈관 질환에서 선천성 심장병, 폐암, 식도암, 호흡기 관련 중환자 치료까지 생명과 직결되는 질환을 수술로 치료하기 때문에 의사 가운데 가장 자부심이 컸다. ‘하얀거탑’ ‘슬기로운 의사생활’ ‘낭만닥터 김 사부’ 등 메디컬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대부분 흉부외과 의사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의대생들은 ‘자랑스러운’ 흉부외과를 기피하고 있다. 흉부외과 전문의들은 하루 평균 12.7시간(주당 63.5시간)을 근무해야 하는 데다 5.1일 만에 야간 당직을 서야 할 정도로 업무가 과중하다 보니 51.7%가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린다.
따라서 흉부외과를 기피하는 걸 의대생들의 이기주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흉부외과 의사가 줄기 시작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정부가 문제를 인식하고 2009년부터 흉부외과 수가(酬價)를 높여주는 등 당근을 주고 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지난해 배출된 흉부외과 전문의는 20명에 불과해 1993년(57명)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흉부외과 전문의 1,161명 중 50세 이상 ‘고령’ 전문의가 60.8%(707명)에 이른다. 전형적인 역피라미드식 고령화 구조인데,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10년 이내 퇴직할 전문의가 436명(37.5%)인데 충원율은 50%도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10년 뒤면 심장ㆍ폐 수술을 할 의사가 1,000명도 되지 않는다.
반면 흉부외과 진료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폐엽절제술은 20년 전보다 74.7% 증가했고, 대동맥 박리 수술도 33.8% 늘었다. 게다가 흉부외과 전문의가 서울에 집중되면서 지방에서는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심장ㆍ폐 수술을 하지 못하는 지역 병원이 적지 않게 됐다.
학계에서는 흉부외과가 붕괴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낮은 의료 수가를 꼽고 있다. 흉부외과에서 가장 많이 시행되는 폐엽절제술은 4시간 걸리고 5명의 의료인이 필요하지만 수술비는 150만 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의사 인건비는 20%로 낮게 책정돼, 흉부외과 전문의의 시간당 인건비는 7만5,000원이다. 고난도 수술을 집도하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시간당 11만8,750원의 박봉에 시달린다는 코로나19 진료 파견 의료인보다도 더 적은 보수를 받는 셈이다.
김경환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흉부외과 진료 수가 합리화ㆍ전공의 수련 지원 등을 위한 ‘흉부외과 특별법’ 제정 △흉부외과 위기에 대한 정부 주도 조사를 위해 ‘흉부외과 및 필수 의료과 대책위원회(가칭)’ 구성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흉부외과 의사는 ‘독수리 눈(eagle’s eye), 사자 심장(lion’s heart), 여인 손(lady’s hand)’이 꼭 필요한 ‘의사의 꽃’이다. 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