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왜 '유럽 통합'을 강조해왔나

입력
2022.06.21 04:30
14면

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화요일 연재합니다.


<39> 프랑스 행보의 중심엔 언제나 에너지가 놓여 있다


특정 국가가 완벽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요소를 자체적으로 구축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 국방, 식량, 에너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현재 이 세 가지 부분에서 국제사회의 변화에 의존하지 않고 완벽하게 자립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중국을 비롯한 일본, 유럽연합(EU) 내 몇몇 회원국 역시 국제사회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각 국가의 내부 사정 내지 의사결정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들이 결핍된 부분을 벌충하기 위한 행보들을 선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여러 유럽국가들이 선택한 의사결정 역시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프랑스 역시 예외는 아니다.

프랑스는 농업 강국이다. 1960년대부터 프랑스가 유럽통합에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농산물 수출과 석탄 수입을 빼놓을 수 없다. 대표적 농산물 과잉생산국인 프랑스는 자신들의 잉여 농산물을 유럽 각 국가에게 적절히 판매하지 않을 경우 자국 내 농업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원만한 농업 수출 환경을 구축하고자 유럽 통합을 적극 찬성해 왔다.

이와 달리 에너지 분야는 항상 프랑스의 골칫거리다. 줄곧 국제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국가들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미국, 러시아, 캐나다는 익히 알려진 세계적인 자원 부국들이다. 영국 역시 북해 앞바다에서 석유 매장량이 확인됨에 따라 엄연한 산유국 반열에 올라 있다. 독일 역시 갈탄과 석탄을 기반으로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라 가운데 에너지 자원을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못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프랑스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경제 발전을 뒷받침할 자체적인 에너지원 확보가 어려운 프랑스는 늘 에너지를 원활히 수급받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프랑스의 국제적 행보를 가장 적절히 설명하는 방법은 에너지 수급에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프랑스가 걸어온 역사적 상황 속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승전국 프랑스, 독일 석탄을 전쟁배상금으로 원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프랑스는 승전국으로서의 지위와 권리를 주장하는 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력이 아닌 미국, 영국 등 연합군의 도움 덕분에 승전국이 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과정 도중 독일을 지나치게 가혹하게 다뤘다는 이유에서 독일인들이 2차 대전을 전개하도록 유도했다는 비판마저 받았다. 승전국이지만 전쟁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하지만 프랑스가 1차 대전 이후 독일 정부로 하여금 가혹할 만한 수준의 피해보상금을 요구하게 된 배경 역시, 자원을 독일로부터 조달받지 않고서는 경제회복을 하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런 사정은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특히 독일의 석탄과 철강 생산 능력을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두 부문에서 독일과 비교해 고질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경제력에서 독일 우위 구조는 영구히 극복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프랑스는 독일 철강 생산의 중핵이자 풍부한 석탄매장량을 가진 루르 지방을 장악해 산업시설을 해체하고, 이 지역의 석탄을 전쟁배상금으로 받아 자국의 경제회복에 활용하고자 하는 희망을 국제사회에 피력했다.

유럽 대륙에서 철과 석탄의 주요 산지는 공교롭게도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지대에 밀집돼 있었다. 독일의 루르-자르 지방,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지방, 벨기에 등에서 질 좋고 풍부한 석탄과 철광석이 산업혁명과 함께 활발하게 개발됐다. 독일은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랑스는 루르-자르 지방을 각각 원했다. 알자스-로렌은 라인강 서쪽에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인데, 중세부터 철광석이 풍부한 곳으로 유명했다. 프랑스가 보유한 철광석 매장량 90%가 알자스-로렌에 묻혀 있다. 라인강 동쪽 루르 지방에는 양질의 석탄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독일 석탄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가 이곳 탄전에서 생산된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루르 지방을 전쟁 배상금으로 확보하게 되면 전후 피해 복구뿐만 아니라 향후 경제 발전에도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특히 루르 지방 중에서도 자국과 이웃한 자르 지역을 자국 보호령으로 편입시키려는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사실 2차 대전 발발 이유 역시 루르 지방 때문이었다 할 수 있다. 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후 프랑스는 알자스-로렌을 차지했다. 또 독일이 전쟁배상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루르 지방을 점령했다. 프랑스의 루르 점령 이후 독일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초고물가)에 시달리며 고통을 겪게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슈만 플랜'으로 유럽석탄철강공동체 이끌어

그러나 루르 지방에 대한 미국의 접근법은 전혀 달랐다. 2차 대전 전후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 진영이 급성장하자 독일을 너무 가혹하게 처분하기보다는 당시 서독을 공산 진영이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한 최전선으로 삼고, 육성ㆍ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독일뿐만 아니라 서유럽 국가들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대규모 원조 계획을 발표한다. 결국 프랑스는 독일이 보유한 석탄과 철광석을 기반으로 전후 피해를 빠르게 복구하려는 계획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프랑스가 주도권 행사를 일정 부분 단념하고 미국 정책에 전향적으로 협력하기로 결정하자, 잃어버린 줄 알았던 영향력을 회복할 기회가 다른 형태로 찾아왔다.

프랑스는 미국이 제안하고 기획한 국가들 간 협력 관계 속에서 경제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 수급 방식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당시 영국이 다른 국가들과 협력을 거부하고 특별대우를 요구하면서 미국과 사이가 틀어지게 된 상황이 오히려 프랑스에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제공했다.

프랑스는 1950년 5월 9일 초국가 공동체의 건설을 통해 석탄과 철강 생산을 공동으로 조율하고 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슈만 플랜’을 발표했다. 프랑스는 이를 통해 석탄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국의 철강 산업마저 육성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결국 슈만 플랜에서 구체화된 유럽공동체의 전신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1951년 4월에 출범했다.

에너지 수급 문제가 프랑스의 의사결정에 얼마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지는 오일쇼크 당시에 다시 한번 확인된다.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yㆍEC)는 1973년 11월 ‘아랍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당시 EC의 이 같은 성명은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결과다. 프랑스는 1차 오일쇼크 이전부터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행보에 불만을 제기해 왔다. 미국과 영국계 정유회사들이 중동의 석유 이권을 독점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오일 쇼크 당시 중동 국가들의 석유 감산 조치가 지속되자 유럽공동체는 프랑스 주도로 아랍을 지지하는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석유 대신 원자력에 집중...'상실된 주권 회복'

이후 프랑스는 석유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기 위해 원자력발전에 집중한다. 프랑스가 원자력에서 대안을 찾게 된 배경에는 2차 대전 당시 핵무기의 위력을 실감하고 국방력 강화 방안으로 원자력 기술에 관심을 둔 것이라는 평가다. 1958년 출범한 유럽원자력공동체의 1, 2, 3대 의장국이 프랑스였다는 사실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950년대부터 줄곧 원자력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프랑스 입장에서는 원자력 기술을 통한 에너지 자립 시도는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결과 프랑스는 2018년 기준, 56개 원전을 운영하는 세계 2위의 원자력 강국이 됐고, 전체 전력 가운데 75%가량을 원자력으로 조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과거 원자력발전을 통해 자체 에너지 수급 방안을 확보한 것을 두고 ‘상실된 주권의 회복’이라고 언급한 바도 있다.

최근 프랑스의 행보 역시 에너지 수급이라는 관점에서 많은 것들이 설명된다. 유럽의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조치를 강력하게 지지했던 프랑스의 경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로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량을 되레 늘린 것으로 나타나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EU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동안 프랑스는 수입을 늘려 세계 최대 LNG 구매국이 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전쟁 종식을 위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굴욕을 당해선 안 된다"고 주장해 우크라이나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또한 프랑스 정부가 최근 원자력 프로그램 재건을 위해 517억 유로(약 70조 원)를 투자해 2035년까지 최대 14개의 원전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유럽통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국제사회에서 미국, 영국과는 다른 제3의 의견을 종종 피력해 왔던 프랑스. 그 이면에는 줄곧 에너지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프랑스인들의 고충과 함께 국가 이기주의도 혼재돼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