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서울 강남구 모 안과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은 50대 직장인 A씨. 수술비는 1,500만 원에 달했지만, “100%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병원 관계자 말을 믿고 수술을 진행했다. 그러나 A씨로부터 보험금을 청구받은 보험사는 석 달 동안 의료 자문을 핑계로 보험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A씨는 20일 통화에서 “보험금을 호언장담했던 병원은 ‘나올 테니 기다려 보라’는 얘기만 하고, 보험사는 약관에도 없는 의료 자문까지 요청하더니 아직까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이 와중에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와 혹시나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할까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대법원이 백내장 수술을 일괄적으로 ‘입원 치료’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리면서 보험 가입자들이 대혼란에 빠졌다. 병원 말만 믿고 수술을 받았지만, 보험금 지급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자비로 부담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미 수술비를 챙긴 병원은 발을 뺐고,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명분이 생겼으니 결국 보험 가입자들만 홀로 부담을 떠안게 됐다.
보험금 청구 결과를 기다리는 가입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백내장 보험금 미지급 피해자 모임’ 가입자 수는 이날 기준 1,200명을 넘어선 상태다. 3월 수술을 받은 직장인 B씨 역시 세 달째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B씨의 담당 의사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지만, 보험사의 일방적 요청으로 받게 된 의료 자문은 ‘백내장은 맞으나, 수술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다’였기 때문이다. B씨는 “이미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보험사들이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배째라'식으로 나올지 우려된다"고 했다.
보험금 미지급에 대한 불만은 병원으로도 번졌다. 애초에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보험 가입자들에게 병원이 수술을 권유할 경우, 가입자 입장에서는 이를 거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4월 수술을 받은 C씨는 “의사가 수술밖에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하는데 해야지 어떻게 하겠느냐”며 “눈이 불편한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 권유가 ‘과잉 진료’인지 아닌지 알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가입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보험사들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대법원 판결 취지는 백내장 수술을 일괄적으로 입원 치료라고 볼 수 없다는 얘기지, 입원 치료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입원 치료의 세부 기준을 둘러싸고 보험사와 가입자 간 분쟁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역시 대책 마련을 고심 중이다. 대법원은 백내장 수술 입원 판단 기준으로 △의료 기관에서 관리받을 필요성 △최소 6시간 이상의 관찰 필요성 △증상·치료 경위 등 환자의 개별적 조건까지 만족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대한 소비자 피해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대응책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