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9유로 티켓'으로 들썩이고 있다. 9유로 티켓은 9유로, 즉 한화로 1만2,212원(19일 기준)만 내면 한 달 동안 무제한으로 근거리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승차권이다. 소득·연령과 상관없이 누구나 구입할 수 있으며 올해 6~8월 한시 판매된다. 독일운송회사협회는 독일 언론 ZDF에 "14일까지 1,600만 장이 팔렸다"고 했다. 이에 '9유로 티켓 추천 여행지' '9유로 티켓 잘 활용하는 법'과 같은 '꿀팁' 공유가 유행 중이다.
18일(현지시간) 베를린역에서 만난 팻과 조엘 커플도 9유로 티켓을 갖고 있었다. 팻은 한국일보에 "매월 대중교통에 63유로 정도를 썼는데, 54유로(약 7만3,428원)를 아끼게 됐다"고 했다. 주말을 맞아 발트해로 떠난다는 이들은 "9유로 티켓을 영원히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9유로 티켓을 끊고 가족을 만나러 간다는 한 여성도 "티켓이 없었다면 주말 여행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듣는 9유로 티켓은, 그러나 영원해서는 안 되는 모순을 품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등 물가 인상(인플레이션)의 타격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언론은 9유로 티켓을 이른바 '푸틴플레이션'(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 대응책으로 부른다.
독일은 푸틴플레이션 위기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달 1일부터 유류세를 인하했고, 올해 가을에는 납세자 모두에게 300유로(40만7,070원)를 '에너지 보조금' 명목으로 지급할 방침이다.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에서 속도를 제한하는 방안, 승용차 운전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 등 극약처방이 독일 집권당(SPD) 지도부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7.9% 올랐다. 특히 에너지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38.3% 올랐다. 통계청은 "오일 쇼크가 발생한 1973~1974년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유럽 다른 국가들도 긴장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서 전체 에너지 수요 약 20%를 충당할 정도로 러시아 의존도가 높다. 유로스탯(EU 통계국)이 지난달 31일 공개한 5월 물가상승률 지표를 보면, 에너지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39.2% 뛰었다. 영국, 이탈리아 등 주변국에서도 독일의 9유로 티켓이나 에너지 보조금과 비슷한 취지의 조치들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물가 고공행진 속에서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헝가리로 떠나는 '휘발유 쇼핑'이 대표적 사례다. 헝가리 휘발윳값은 EU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헝가리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연료 가격에 상한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인접국 국민들이 헝가리에서 휘발유를 대량 구매해 공급이 딸리자, 헝가리 정부는 휘발유 할인 혜택 대상을 헝가리인 한정으로 묶었다. 헝가리 데일리뉴스는 운전면허증과 자동차등록증을 외국인들에게 10유로를 받고 빌려준 헝가리인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