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차 직장인 박모(30)씨는 입사 이후 월급을 꼬박 모아 2억 원 가까이 마련했다. 10억 원을 웃도는 서울 집을 사기엔 역부족이었다. 박씨가 빌려야 할 돈은 최소 8억 원이지만 '대출 불가' 금액이다. 그는 정부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내 집 장만'의 길을 열어 주는 대책을 내놓는다길래 기다렸다. 정책은 나왔지만 박씨는 올해도 신혼집 마련을 포기했다.
최근 정부가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 담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 대책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상한을 80%로 완화 △대출 한도를 4억 원에서 6억 원으로 확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시 연령대별 소득 흐름 평균을 고려해 미래 소득 반영이다. '주거사다리 형성 지원'이라는 목표도 내세웠다.
정작 박씨에게 이 정책은 무용지물이다. 받아야 할 대출금은 한도인 6억 원을 넘는다. 이마저도 DSR 규제 때문에 7,300만 원(30대 초반, 주택담보대출 금리 4% 기준) 정도의 연봉을 받아야 대출할 수 있다. 그는 "지금 월급으로는 턱도 없다"며 "부모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결혼을 계속 미뤄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의 대출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지만 청년들의 주거 부담을 덜어 주기에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잇따른 금리 인상을 예견하지 못한 관성에 기댄 정책이라는 것이다.
심모(29)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10년간의 전·월세살이를 청산하고 인생 처음 내 집 장만을 꿈꿨다. 전세 만료일인 올해 12월 대출을 받아 경기 지역의 6억 원 이하 주택을 사려 했지만 1년 새 상황은 뒤바뀌었다.
심씨가 대책대로 LTV 80%를 적용해 6억 원 주택을 사려면 4억8,000만 원을 대출받아야 한다. 금리 5.19%(16일 기준 KB국민은행 변동형 주담대 금리 상단)로 30년 만기 주담대(원리금 균등분할상환 방식)를 받으면 매달 263만 원을 갚아야 한다. 지난해 6월 금리가 2.7%일 때 상환금이 194만 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70만 원 가까이 더 내야 하는 셈이다. 심씨는 "갚아야 할 돈이 월급의 절반 이상인데 어떻게 감당하냐"며 "집 살 마음은 접었고 지금 사는 전셋집 계약을 연장하려 한다"고 토로했다.
금리 인상기에 청년들의 주거 부담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4월 거래된 시중은행의 주담대 평균 금리는 3.75~4.37% 수준이다. 이번 달 들어서 7%대 주담대 금리가 나오면서 일각에선 연내 8%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정책의 취지는 좋지만 타이밍이 늦었다"며 "이미 집값이 오를 대로 오르고, 금리 인상으로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오히려 청년들을 빚 폭탄으로 내모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생애 최초로 집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금리 상품을 개발해 금리 인상 브레이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