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민간 정보통신업체 A사는 지난해 군이 발주한 130억 원대 사업을 낙찰받았다. 하지만 허위서류를 제출해 따낸 물량이었다. 군 수사당국이 밝혀낸 사실이다. 그런데도 업체는 여전히 용역을 수행 중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군 당국은 경찰이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반년 동안 A사에 어떤 제재도 내리지 않았다. 직접 비위를 적발하고도 문제가 있는 업체에 일감을 준 셈이다. 군의 부실한 사업 관리와 미온적 처벌은 처음이 아니다. 의혹이 쌓일수록 군 사업의 신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의 사업은 국방부 소속 국군재정관리단이 지난해 7월 발주한 ‘상용정보통신장비 통합유지보수사업(1ㆍ2지역)’. 육군이 쓰는 컴퓨터와 네트워크 장비, 서버 소프트웨어 등 전산장비를 유지보수하는 업체를 선정했는데, 1ㆍ2지역에는 총 130억 원 상당의 예산이 배정됐다. A사는 같은 달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19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업체는 기술능력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발주처에 제출하는 정비인원 보유 명단에 실제 취업하지 않은 여러 명의 ‘특급기술자(기술사 보유자)’를 등재했다. 명의만 빌려 실적을 부풀린 것이다. 해당 사업 적격심사 평가 기준을 보면 △최근 3개월 이상 근무한 정비사를 많이 보유할수록 △정비사의 경력 등급이 높을수록 점수가 많이 배정됐다.
또 업계에선 중소기업인 A사가 낙찰 점수를 받으려면 특급기술자를 족히 40명 넘게 보유해야 한다고 지적하는데, 업체는 허위 제출한 인력을 포함해도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재정관리단에 의혹을 제기하는 업체들의 민원이 빗발쳤지만, “문제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지난해 8월쯤 유사한 민원 내용을 접수하고 나서야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고, 석 달 뒤 부정한 방법으로 입찰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조사본부는 즉시 수사 결과를 육군에 통보하고 사건을 그해 12월 민간 경찰에 이첩했다. 6개월이 지난 현재 A사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업체 관계자는 통화에서 “특급정비사들을 명부에 넣은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경찰 조사가 끝나지 않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육군 측도 “민간업체의 비위 사건이라 경찰 수사 결과가 나와 봐야 제재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찰이 최종 판단을 내리지 않아 유지보수 업무를 취소할 수 없다는 얘기다.
군의 해명은 사실일까. ‘국가계약법’에는 계약상대자가 입찰 서류 등을 허위나 부정한 방법으로 제출해 계약이 체결된 경우 담당공무원이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군 수사에서 명백한 허점을 밝혀내고도 처벌을 꺼린다는 힐난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군이 나 몰라라 하는 사이 A사는 계속 배를 불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민간 경찰의 수사가 언제 종료될지는 기약할 수 없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업체 관계자도 부르지 않았다”며 “다만 서류 보충을 요청할 때 군이 가능한 조치가 있으면 먼저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군이 혐의를 입증한 수사의 후속 조치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은 이전부터 있어 왔다. 2018년 터진 ‘대북확성기 비리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국방부와 감사원은 확성기가 기준 미달임을 확인했고, 음향기기제조업체 관계자들은 실형까지 받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군이 하자처리나 부당이득금 반환 조치를 하지 않은 탓에 관련자들은 60억 원 이상의 부당이득금을 그대로 편취했다.
2020년 중국산 해강안(海江岸) 감시 장비를 국산으로 둔갑시켜 납품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업체가 100억 원 이상의 부당이득을 올린 사실이 확인되고, 올 4월 검찰이 군납업체 관계자 등 4명을 기소했으나, 군은 여전히 하자처리를 외면하고 있다.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은 “군이 스스로 밝혀낸 수사결과를 믿지 못하니 군 사업에서 부정이 횡행하고 몸으로 때우는 풍토가 조성된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