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성장'의 미신

입력
2022.06.19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6일 감세를 주요 내용으로 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이 발표된 후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법인세율 인하가 기업 투자를 증가시킬 것이라는, 재정학자인 자신도 모르는 어떤 근거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근거 없다는 설명이다. 새 정부는 법인세를 25%에서 22%로 낮춘 이명박 정부로 회귀한 셈인데, 당시 기업들은 글로벌 위기 환경에서 사내유보금만 늘렸다. 감세가 성장 동력이라는 통념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만든 허구에 불과하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 종합부동산세·재산세 경감과 금융투자소득세 유예는 부자 감세 공방으로 이어졌다. 부자에게 부를 늘려주면 저소득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 또한 허구다. 시카고대 경영대학원이 미국의 31차례 조세감면의 효과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상위 10%가 득 보는 감세는 고용과 소득 성장에 영향이 없었다. 하위 90%에 대한 감세는 효과가 있었다. 일찍이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낙수 효과’란 1890년대 ‘말과 참새 이론’의 반복이라 했다. 말에게 귀리를 많이 주면 일부가 떨어져 참새에게 갈 뿐이라는 것이다.

□ 감세의 성장 효과는 불확실하나 세수 감소의 부작용은 당장 닥칠 문제다. 2008년 법인세·소득세·종부세를 인하한 세제개편 후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2년까지 총 89조 원의 세수가 덜 걷힐 것으로 분석했었다. 윤석열 정부는 5월 사상 최대인 62조 원 추경을 풀면서 초과세수 53조 원을 예상했는데 세금을 깎아주면서 세수는 어디서 더 걷을지 의아하다. 재정건전성을 목숨처럼 지키던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표변도 납득하기 어렵다.

□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와 영국 대처 정부가 기업·부유층 감세와 규제 완화, 노조 억압을 통해 성장을 촉진하려 했을 때 밀턴 프리드먼 등의 이론이 바탕이 됐다. 당시엔 낙수 효과를 실증적으로 검증한 연구가 없었다. 하지만 연구결과가 축적된 지금 감세를 통한 성장은 미신이라는 게 경제학계의 합의다. 경제학자들이 새롭게 밝혀내고 있는 부자 감세의 효과는 따로 있다. 불평등 심화다. 과학적 사실을 외면한 정책결정이 우려되는 이유다.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