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염병 창궐 지역 주민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하사했다는 의약품을 전달받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주민들이 받아든 약봉투에는 생리식염수 등 기초 의약품이 대부분이어서, 의료 위기마저 김정은의 '생색내기 정치'에 이용되고 있는 북한의 현실을 실감케 한다.
최근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 등 당 지도부가 이질, 장티푸스 등 급성 장내성(수인성) 전염병이 창궐한 황해남도 해주시, 강령군 등에 보낼 의약품을 준비하는 모습과 의약품을 받아들고 감격해 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사랑의 불사약을 받아안은 해주시 인민들은 고마움의 눈물로 두 볼을 적시며 ‘김정은 동지 만세!’를 목청껏 외쳤다”고 전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의약품을 전달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보도된 사진과 TV화면을 살펴보면, 이들 800여 세대 주민들에게 전달된 약품은 치료제라기 보다는 식염수, 링거액, 지사제, 해열제 등 기초 약품이 대부분인 것으로 추정된다.
상하수도 시설이 열악한 북한에서는 수인성 전염병이 심심찮게 발생하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2년 넘게 국경이 봉쇄되면서 의약품 수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주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달 코로나19 확산 사실을 공개한 이후 지역 간 이동마저 차단되면서 장마당을 통한 의약품 유통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전염병 유행과 의약품 부족 사태를 활용해 자상한 지도자 이미지 형성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북한 내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초기 자신이 앞장 서서 의약품을 기부했고, 마스크 2개를 겹쳐 쓴 채 평양 시내 약국을 직접 시찰하며 의약품 조달 상황을 챙기기도 했다. 이는 전염병 확산과 의약품 부족으로 동요할 수 있는 민심을 다독이고, 고난의 상황에서도 최고지도자는 항상 주민을 돌보기 위해 노력한다는 긍정적 이미지를 심기 위한 정치적 행보로 해석된다.
김정은의 생색내기 정치에는 부인 리설주 여사, 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을 비롯해 당 고위급 간부들까지 동참했다. 최측근인 조용원 당 중앙위 조직비서와 리일환 노동당 비서, 현송월 의전비서도 지난 16일 가정에서 성의껏 마련한 의약품을 전염병 발생 지역 주민들에게 보내달라며 기부 대열에 동참했다.
한편, 북한은 최근 잇따른 미사일 도발과 더불어 대남·대미 강경 메시지를 쏟아냈으나, 주민들은 고질적인 식량난에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령, 수인성 전염병까지 더한 삼중고를 겪고 있다. 경제 제재를 넘어 보건 위기까지, 날로 악화하는 국내 상황 속에서 김 위원장의 생색내기 정치가 어디까지 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