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루마니아 정상들이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을 지지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동안 확실한 찬성도, 명백한 반대도 아닌 미지근한 입장을 취했던 EU ‘빅(Big) 3’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우크라이나에 힘을 실으면서 서방은 흐트러졌던 단일대오를 재정비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를 양보하고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압박했던 국제사회 일부 여론도 수그러들었다. 우크라이나 동부서 승기를 잡은 러시아 역시 당장은 전쟁을 끝낼 계획이 없어 조기 종전 가능성은 희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클라우스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은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즉시 EU 후보국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가족”(숄츠 총리)이며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수호하고 있다”(드라기 총리)는 연대 메시지도 내놨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EU 후보국이 되는 것은 유럽을 강화하는 역사적인 결정이 될 것”이라면서 정상들에게 사의를 표했다.
EU 집행위원회는 17일 우크라이나에 후보국 지위를 부여할 것을 권고했다. EU 집행위가 여러 차례 심의 절차를 밟지 않고 이처럼 빨리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이후 23~24일 EU 정상회의에서 회원국 만장일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식 회원국이 되기 위해선 정치 제도, 사법 체계, 경제 구조 등 EU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해 수년이 걸리지만, 후보국 지위만으로도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항할 동력이 될 수 있다.
서방도 이번 키이우 방문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약해졌다는 의구심을 떨쳐내는 정치적 성과를 얻었다. 루마니아 대통령이 빅3와 동행하면서 그간 종전 해법을 두고 ‘주전파’ 동유럽 국가들과 ‘주화파’ 서유럽 국가들 간 벌어졌던 틈새도 메웠다. 특히 ‘중재자’를 자처하며 “러시아에 굴욕을 안겨선 안 된다”는 현실론을 내세워 우크라이나의 반발을 샀던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은 우크라이나 곁에 남아 승리할 것”이라는 호전적 발언까지 쏟아냈다.
협상 재개 카드가 후순위로 내려오면서 조기 종전 가능성도 낮아졌다. 서방의 무기 지원도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여, 장기전 양상이 고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프랑스는 앞서 지원한 세자르 자주포 12문 외에 추가로 6문을, 독일은 대공포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투를 중단하고 협상할 의사가 전혀 없다”며 “러시아가 전쟁을 중단할 때까지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만큼, 가능한 빨리 군사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 쉼 없이 포탄을 퍼붓고 있는 러시아 역시 현재로선 전쟁을 끝낼 뜻이 전혀 없어 보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영국 BBC방송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끌어들이는 것은 범죄 행위라는 것을 서방에 설명할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특별군사작전을 선포한 것”이라며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공개적으로 러시아를 굴복시켜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럼 그렇게 해보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