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헨리 8세의 변기 보좌관

입력
2022.06.16 19:00
25면

그때는 명예로웠지만 지금은 이상한 직업

영국의 헨리 8세(1491~1547)는 유럽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왕 중 하나일 것이다. 그의 삶은 선정적인 스캔들과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가득 차 있다. 앤 불린과의 열정적인 로맨스와 참수, 그리고 여섯 명의 아내를 둔 호색한으로 악명 높다. 헨리 8세는 절대왕정을 확립한 강력한 군주이자 수많은 정적과 반대자를 처형하고 공포정치를 행한 폭군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엔, 188㎝ 정도의 장대한 체격에 미남자였던 그는 말타기와 무술을 즐긴 만능 스포츠맨이었고, 국민들에게는 대체로 강하고 호탕한 왕으로 알려져 있었다.

위 작품은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이 그린 초상화로, 헨리 8세의 힘과 권위를 잘 표현하고 있다. 홀바인은 알브레히트 뒤러, 루카스 크라나흐와 함께 16세기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로 서양미술사를 통틀어 최고의 초상화가 중 한 사람이다.

화가는 헨리 8세의 네 번째 결혼을 기념해 이 초상화를 그렸다. 파란색 배경에는 '그의 나이 49세'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사각형의 몸통과 관람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얼굴은 힘과 권위, 절대적 존재감을 드러낸다. 가슴팍에 둥글게 걸쳐진 목걸이와 모자의 아치 형태는 후광과 같은 이미지를 주는 동시에 사각의 몸통과 조화를 이루며, 팔과 벨트의 원으로 그 리듬이 이어진다. 금, 진주, 깃털로 꾸며진 모자와 자수, 보석, 모피로 정교하게 장식된 화려한 의상은 그의 부와 지위를 보여준다. 왼손은 화면 우측 아래 칼집을 잡고 있는데, 무력을 과시하는 듯하다. 홀바인은 실크, 브로케이드, 모피 등 다양한 직물로 만든 더블릿(Doublet, 15~17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남자 윗옷)의 질감을 완벽하게 표현했고, 칼과 보석도 매우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초상화에서도 보여지듯이, 헨리 8세는 실제로 막강한 권력과 카리스마로 영국을 지배했다. 왕의 가장 내밀한 사생활을 들여다본다면, 심지어 배변 행위에서조차 그가 얼마나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6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영국 왕실에는 왕의 배변 행위를 돌보는 변기 보좌관(groom of the stool)이 있었다. 헨리 7세 때 처음 등장한 이 일은 역사상 가장 이상한 직업 중 하나일 것이다. 왕은 '스툴(stool)'이라고 하는 변기 의자에 앉아 볼일을 보았는데, 이를 시중드는 변기 보좌관은 왕이 끝마쳤을 때 수건과 물이 담긴 대야를 가져다주었다. 또, 대변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날그날 상태에 대해 의사와 상의함으로써 왕의 건강을 보살폈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변기 보좌관이 엉덩이 닦아주는 일까지 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현대인은 사회의 최하류 계층이 이 일을 담당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은 귀족이나 젠트리 계층의 자제들이었다. 특히 헨리 8세 때 변기 보좌관의 권한이 확대되었다. 왕의 배변 시중은 최측근이 되어 부와 명예,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엎드려서 왕의 엉덩이를 씻어주고 변을 치우는 것도 귀족으로서의 위신과 명망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리라. 왕은 매일 변기에 앉아 비밀스러운 정치 이야기나 개인적 고민에 대해 말했고,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들은 왕과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왕이 무방비 상태에 있을 때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곧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왕의 동반자이자 친구, 형제 같은 존재였다.

공식적인 정치 권력을 갖거나 의회에 참석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치에 미묘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또한 왕이 옷을 입고 벗는 일, 왕의 지출, 신변 보호와 보안 등 일상의 모든 것을 관리한 개인 비서였다. 이것은 당시 영국의 모든 귀족이 꿈꿨던 직업이었고, 높은 급료와 권력을 보장하는 자리였다. 사람들은 종종 그들에게 접근하여 청탁을 하거나 일자리를 부탁했다.

헨리 8세는 말년에 체중이 급격히 늘어 허리둘레가 무려 54인치에 달했고 180㎏의 몸무게를 가졌다고 한다. 마상 창 시합 중 낙마해 말에게 짓밟혔는데, 이 심각한 부상 이후엔 별다른 신체 활동 없이 하루에 5,000㎈ 정도를 섭취했다. 많이 먹는 것이 남성다움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던 시대였고, 그 또한 엄청난 대식가이자 미식가였다. 자연히 배설량도 많았을 것이다. 고도비만에다 고혈압, 당뇨병, 만성 다리 궤양, 혈액 순환 불량, 변비 등 전체적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냄새도 매우 고약했으리라.


사람들은 권력에 끌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랬다. 장자의 '열어구'에 '치질이 있는 항문을 핥아 수레를 얻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명예와 재물을 얻기 위해 더럽고 부끄러운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가 병이 들었을 때 요강 속 물찌똥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본 후 곧 완쾌할 것이라고 하여 환심을 샀다. 우리말에도 누군가에게 아첨하고 알랑거린다는 의미로 'XX 빤다'라는 속된 말이 있다. 왕의 은밀한 생리 현상을 돕는 대가로 부와 명예를 얻었던 헨리 8세의 변기 보좌관은 이 비속어를 연상시킨다.

힘 있는 사람에게 아부하는 것은 인간 세상의 오랜 처세술이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사람도 이에 약하다. 권력자는 살살 비위를 맞추는 아부꾼들에게 둘러싸이기 마련이다. 알랑거리는 달콤한 말에 취약한 인간 심리의 틈새를 파고든 아첨쟁이들이 똥파리 떼처럼 꼬인다. 가벼운 아첨은 순탄한 사회생활을 위한 생존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누가 봐도 메스꺼울 정도로 권력자에게 아첨을 해대는 말이나 행위는 대변처럼 역겨운 구린내를 풍긴다. 그들은 현대의 '변기 보좌관'이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