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公私) 경계를 넘나드는 김건희 여사의 대외 활동에 윤석열 대통령이 적잖이 당혹한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15일 ‘제2 부속실 부활 의견이 나온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차차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대통령 부인의 활동에 대해서 공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여론은 높지만 대선 공약인 ‘제2 부속실 폐지’를 뒤집는 일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 공약 뒤집기로 큰 곤욕을 치른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후보 시절 ‘모든 어르신에게 20만 원의 기초연금 지급'을 공약했다가 당선 후 말빚을 갚느라 진땀을 흘렸다.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70%로 축소했고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감액하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거센 반발이 나왔는데, 자존심 강한 박 대통령도 결국 지지층인 노인들에게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 선거 공약 파기는 드문 일이 아니다. 새 정부 역시 많은 선거 공약들을 축소하거나 폐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취임 직전인 지난달 3일 인수위가 미리 공개했던 110개 국정과제에는 공약인 여성가족부 폐지, 사드 추가 배치는 빠졌다. 윤 대통령은 취임 즉시 이등병부터 월 200만 원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2025년 병장부터 지급하는 것으로 축소했다.
□ 공약 파기가 착한 ‘공약 뒤집기’로 호평을 받을지, 반대로 ‘착한 공약’ 뒤집기로 비난받을지는 한 끗 차이다. 분명한 것은 공공선에 기여하고 정파적 이익과 무관한 결정이라면 전자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논란은 컸지만 박 전 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 뒤집기’는 지금 돌아보면 착한 ‘공약 뒤집기’였다. 현금복지와 유권자의 정치적 지지를 맞교환하는 후진국형 복지모델로의 이탈을 조금이나마 제어했기 때문이다.
일괄적 기초연금 인상, 범죄 예방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촉법소년 연령 하향, 개방 후에 뚜렷한 생태계 개선 효과가 나타난 4대강 보의 유지 같은 윤석열 정부의 공약에 우려를 표시하는 이들이 많다. 만일 이 공약들을 뒤집는다면 정치적 인기는 떨어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착한 ‘공약 뒤집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진솔한 사과만 한다면 제2 부속실 부활 결정 역시 비슷한 평가를 받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