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라면 으레 수묵화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한국 미술사가 조선시대 문인들의 수묵화를 중심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장식물이나 기복신앙에 활용된 회화를 순수 예술로 여기지 않았던 근대적 예술관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달부터 9월 25일까지 과천관에서 여는 한국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는 이처럼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채색화를 재조명해 한국 미술사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번 전시는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제작된 민화와 궁중장식화뿐만 아니라 20세기 후반 제작된 현대 창작 민화와 공예, 디자인, 서예, 회화 등 채색화 전통을 계승한 작품들도 선보인다.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를 비롯해 강요배, 박대성, 박생광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 60여 명이 참여한다.
전시는 벽사와 길상, 교훈과 감상 등 네 가지 주제와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관객들을 처음 맞는 작품은 회화가 아니라 처용을 주제로 제작된 영상 ‘승화’다. 미국 시카고 출신의 영상 예술가 스톤 존스턴의 작품이다. 전시 공간의 사면마다 네 방위를 상징하는 처용이 등장해 춤을 추고 전시공간 가운데에 선 관람객은 5번째 처용이 돼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벽사에 동참하게 된다.
도예가 신상호의 작품인 ‘Totem(토템상)’도 눈길을 끈다. 신상호는 백자와 분청사기 등 도자기류부터 도자 회화, 도자 조각을 거쳐 건물의 외장을 덮는 건축도자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작품을 남긴 작가다. 토템상은 한국적 전통과 아프리카의 아름다움을 결부한 작품이다. 양이나 소 등 동물 머리 모양으로 만들어진 육중한 기둥들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계종 15대 종정에 오르기 전부터 예술가로 이름이 알려졌던 성파 대종사의 작품인 ‘수기맹호도’도 만날 수 있다. 민화 ‘대호도’를 재해석한 옻칠 작품으로 너비가 5m가 넘는다.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전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힘차게 기지개를 펴는 호랑이의 모습에 담았다.
문자에서 전통을 끌어낸 작품들도 주요 전시물로 꼽힌다. 한국화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활동하는 안성민 작가의 ‘날아오르다: RISE UP(라이즈업)’은 민화의 문자도와 서양의 여러 장식 서체, 유럽 전통의 미술양식을 복합적으로 활용해 만들어낸 독특한 서체 디자인 작품이다. 서예가 김종원의 '문(問)'과 '암(闇)'은 한지에 먹과 경면주사를 활용해 문자를 이미지화한 것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한다. 이 형상들은 신을 모신 사당의 입구(門)와 그릇(ㅁ), 신의 대답(音)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