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재 구멍' 인도, 원유 '원산지 세탁'으로 돈 긁어모은다

입력
2022.06.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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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원유 수입 비중, 2%에서 25%로 급증
인도 거친 정제유, 호주·유럽·미국으로 수출
러시아 밀착 인도에  '제3국 제재' 부과 전망도

인도가 국제 공급망에서 퇴출된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으로 사들인 것도 모자라 이를 정제한 뒤 해외에 되팔아 막대한 수익을 거두려 한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 자금줄을 끊기 위한 국제사회의 제재 효과를 떨어뜨리는 행위다. 참다 못한 서방이 러시아 원유 수입국을 대상으로 제재를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도 정유회사들이 러시아 원유를 구입할 때 배럴당 25달러 이상 대폭 할인을 받을 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러시아를 대신한 정제유 제품 대체 공급처 역할을 하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마진을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자히 사하이 인도수출기구연맹(FIEO) 최고경영자는 “인도에서 경유를 수입하고 싶다는 문의가 쏟아지는데 그중에는 유럽 국가들도 있다”고 FT에 말했다.

유럽연합(EU)이 올해 말까지 러시아 원유 수입 90%를 중단하기로 결의하는 등 각국이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인도는 오히려 러시아 원유 업계 큰손으로 떠올랐다. 원자재 정보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인도가 지난달 러시아에서 구입한 원유는 하루 84만 배럴로, 4월 39만 배럴에서 두 배 이상 늘었다. 6월에는 하루 100만 배럴로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5월 기준 인도의 원유 수입량 중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무려 25%에 달한다. 덕분에 지난달 러시아의 원유 판매 수입은 연초보다 50% 증가한 200억 달러(약 25조9,000억 원)를 기록했다.

"인도 때문에 대러 제제에 균열"... 서방의 불만


또 다른 문제는 인도가 원산지를 세탁해 러시아 원유를 전 세계에 공급하는 핵심 기지가 됐다는 사실이다. 나날이 급증하는 러시아 원유 수입량을 고려하면 인도가 해외로 수출하는 경유와 휘발유의 원재료가 러시아산일 가능성은 매우 크다. 노르웨이 에너지 분석업체 라이스타드 자니브 샤 분석가는 “일단 원유가 정제 시스템에 들어와 가공되면, 정제유가 어느 나라, 어느 공급원에서 나온 것인지 구별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실제로 인도가 수출하는 정제유 물량은 상당하다. 인도 언론 비즈니스스탠더드에 따르면, 인도 대형 정유회사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는 지난달 시카항을 통해 러시아에서 원유를 총 1,081만 배럴 수입하고, 유럽과 호주로 경유 256만 배럴과 200만 배럴을 각각 수출했다. 4월에는 미국에 휘발유 89만 배럴을 팔기도 했다. 또 다른 대형 정유회사인 나야라 에너지도 지난달 호주행 유조선에 경유 34만 배럴을 선적했다. 나야라 에너지는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로즈네프트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와의 거래가 곧 러시아와의 거래인 셈이다.

서방은 대러 제재에 균열을 내는 인도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제3국 제재(세컨더리 보이콧)’ 카드도 거론된다. 비즈니스스탠더드는 “러시아 원유를 수입해 가공한 뒤 정제유를 해외로 수출하는 일부 국가들은 러시아 에너지 수출을 고립시키려는 서방의 제재 대상이 될 위험이 있다”며 “러시아 항구를 드나든 선박에 대한 제재, 러시아 원유 및 정제유 제품 화물에 대한 보험 가입 금지 등 교역을 더 어렵게 만드는 조치가 부과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