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잘 봐라"...캐나다-덴마크, 50년 '위스키 전쟁' 끝냈다

입력
2022.06.1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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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해의 1.3㎢ 면적 '한스섬' 나눠 갖기로
양국, 우크라이나 침공한 푸틴  저격
"무력 아닌 국제법 따라 영토 분쟁 해결해야"

덴마크와 캐나다가 북극해의 무인도를 두고 50여 년간 이어온 영토 분쟁인 이른바 '위스키 전쟁'을 끝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소속 두 국가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 중인 러시아에 평화적 분쟁 해결의 모범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14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덴마크와 캐나다는 오타와에서 합의문 서명식을 열고 덴마크령 그린란드와 캐나다령 엘즈미어섬 사이 네어스 해협에 있는 한스섬을 나눠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섬의 원주민인 이누이트에겐 국경 양쪽을 넘나드는 어업권을 약속했다.

한스섬을 둘러싼 영토 분쟁은 1933년 그린란드가 국제연맹 상설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덴마크의 영토로 인정받으며 시작됐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맹이 해체돼 이 판결이 무효가 되자 국제법상 양국의 영해 범위(12해리)에 모두 포함되는 한스섬은 갈등의 씨앗이 됐다.

양국은 1973년 네어스 해협의 경계를 설정했지만, 이때도 섬은 합의에서 제외됐다. 1.3㎢ 면적의 작은 섬이라 경제적 가치는 없지만, 양국 정부는 선거 전 한스섬 방문을 언론에 알리는 등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

분쟁에 '위스키 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1980년대 양국이 경쟁적으로 섬을 방문해 자국산 위스키를 땅에 번갈아 묻었기 때문이다. 첫 도발은 1984년 캐나다군이 섬에 상륙, 캐나다산 위스키와 함께 '캐나다에 온 걸 환영한다'는 팻말과 국기를 세우고 떠난 것이었다.

발끈한 덴마크는 며칠 뒤 톰 회옘 그린란드 담당 장관을 보내 덴마크 국기와 브랜디로 대체했다. 이후 양국 정부 인사와 시민들은 섬을 방문해 상대국이 두고 간 위스키를 자국산으로 바꾸는 신경전을 벌였다. 2018년 두 국가는 실무그룹을 만들어 분쟁 해소에 나섰고, 4년 만에 합의에 성공했다.

이번 합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포함, 전 세계 영토 분쟁이 격화하는 중에 나온 평화적 해결의 '모범 사례'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NATO 소속 국가들의 동맹 의식이 커진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마이클 바이어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정치학과 교수는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대만, 남중국해에서 발생하는 영토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중에 나온 대표 사례"라고 짚었다.

양국 외교장관도 국제법에 따른 분쟁 해결을 강조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저격했다. 이날 서명식에 참석한 예베 코포드 덴마크 외교장관은 "(이번 합의는) 푸틴을 포함한 전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라며 "분쟁이 발생했을 때 '무력'이 아닌 '국제법'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교장관도 "양측이 모두 인정하는 규칙을 지키면서 분쟁을 해결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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