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침수로 훼손이 가속화하고 있는 국보 제285호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이 또다시 표류 위기에 처했다. 수위를 낮추기 위해선 대체 식수원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해결의 열쇠를 쥔 대구시와 경북 구미시의 취수원 갈등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울산시에 따르면, 시는 반구대 암각화의 상습적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하류에 있는 사연댐에 수문 3개를 설치할 예정이다. 수문을 설치하면 여수로(댐에서 수위를 낮추기 위한 수로) 수위가 52.2m로 낮아져 53m 높이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의 침수를 막을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초래되는 식수원 부족 문제 해결이 관건으로 꼽힌다. 수문을 열면 식수원인 사연댐의 예상 용수 공급량이 기존 계획량인 하루 18만 톤보다 27% 감소한 13만1,000톤으로 줄어든다. 정부는 이에 지난해 6월 대구 취수원인 경북 청도 운문댐 물을 울산으로 공급하는 방안이 담긴 ‘낙동강 통합물관리방안’을 내놓았다. 대신 대구는 구미 해평취수장을 공동 이용하기로 했다. 지난 4월 대구와 구미는 해평취수장에서 하루 평균 30만 톤을 추가 취수해, 대구·경북지역에 공급하는 내용의 협정서까지 체결했다. 이 계획에 따라, 해평취수장에서 대구 정수장까지 55㎞ 관로 부설 공사를 2025년 착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6·1 지방선거에서 김장호 구미시장 당선인이 새로 선출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김 당선인이 대구와 구미 간 체결된 취수원 관련 협약이 시의회의 동의를 받지 않았고, 단체장도 교체를 앞두고 있어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김 당선인은 “취수원 공동 이용에 따른 구체적인 보상 방안 없이 대구에 물을 주는 것은 안 된다”며 “협약을 체결했던 당사자도 교체 예정이고, 행정안전부에서도 시의회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은 무효라는 유권 해석이 있었다”고 밝혔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도 취수원 협정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오히려 안동댐과 임하댐, 영천댐, 운문댐 등을 도수로로 연결해 대구시민들에게 공급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홍 당선인은 “지금도 낙동강 수계 상류의 안동댐과 임하댐에서 영천댐까지 도수관로가 이미 연결돼 포항으로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며 "기존 댐을 확장하고 상류 댐으로부터 대형 도수관로를 신설한다면 대구와 영남권 다른 도시들까지 식수 공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정 조항에는 각 기관의 협의를 거쳐 해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새로 취임하는 단체장들의 결정에 따라 협정은 무효화될 수 있다.
협정이 무효화되면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도 원점으로 돌아간다. 보존대책이 표류하면 2025년을 목표로 했던 세계유산 등재도 어려워진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달 12일 열린 세계유산 등재신청 후보 선정 심의에서 “이상적 계획 제시가 아닌 중앙·광역·기초 행정기관과 지역사회가 동의하는 현실적 계획이 수립되야 할 것”이라며 결정을 보류했다.
울산시 관계자는 “환경부 등과의 협의를 통해 다른 조정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 현재로선 운문댐의 물을 받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며 “반구대 암각화 보존과 식수 확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통합 물관리방안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