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인가 글자인가... 농염한 홍등에 '마음' 홀린 상형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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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8 10:00
<94> 윈난 민족 ⑥나시족의 터전 리장고성과 수허고진

티베트 고원에서 남하하던 금사강(金沙江)은 리장(麗江) 부근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옥룡설산이 막고 있어서다. 물줄기는 북으로 100㎞를 흐르다가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래서 리장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으로 강이 흐른다.

리장은 원사(元史)에 처음 등장한다. 관청이 생기며 ‘아름다운 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금사강은 기원전에 엄수(淹水), 삼국시대에는 노수(瀘水)라 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저술된 ‘천자문(千字文)’에 ‘금생여수(金生麗水)’가 나온다. 그 여수일 듯하다. 옛날부터 사금이 나왔기에 북송 시대에 이르러 금사강이라 불렀다.

언제나 가슴 뛰는 도시... 나시족의 터전 리장고성

리장 초입에 라스하이(拉市海) 휴게소가 있다. 언제부터인지 고속도로를 거치는 차량은 모두 정차한다. 여행서비스센터에서 신분증 검사를 한다. 검문소 비슷한데 까다롭지는 않다. 일행 중 한 명만 가서 신고하면 된다. 그동안 호수도 보고 멀리서 손짓하는 옥룡설산을 향해 인사도 한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10번이나 리장을 방문했다. 그럼에도 이 도시에 들어갈 때면 늘 가슴이 쿵쾅거린다. 박동이 만든 흥분은 리장에 머무는 내내 가라앉지 않는다.

1997년에 고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7.3㎢로 크지도 작지도 않다. 명칭은 다옌고성(大研古城)이었다. 지명을 따라 불렀는데 2003년에 '진(鎮)'은 사라지고 도로명으로만 남았다. 자연스레 리장고성이 됐다. 터줏대감인 나시족(纳西族)은 궁번즈(巩本知)라 부른다. ‘궁번’은 창고이고 ‘즈’는 시장이다. 사람 사는 공간이란 뜻이다.

도랑이 졸졸 흘러 고성을 두루 스쳐간다. 물길 따라 가옥이 빼곡하다. 골목이 갈래가 많아 돌아다니다 보면 길 잃기 십상이다. 주민도 살고 있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다. 가게와 식당, 숙소가 꽉꽉 들어차 있다. 북문 입구 수차(水車) 옆에 장쩌민 전 주석의 필체가 있다. 1999년 5월 2일 목부(木府)에서 쓴 글자다.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우고 14년이 흐른 1382년이었다. 나시족 수령이 전쟁 대신에 조공으로 편입됐다. 나시족 수령은 한족이 사용하는 성(姓)이 없었다. 주원장(朱元璋)은 자기 성에서 삐침과 가로획을 뺐다. 졸지에 목씨(木氏)가 됐다. 약 800m를 걸어가면 목부가 나온다.

고성은 성벽과 성문이 없고 통로가 많아 입장료가 따로 없다. 그러나 목부로 들어가려면 티켓을 사야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충의(忠義) 석패방이 나온다. 명나라 만력제의 필체를 하사받았다. 변방 민족인 나시족 토사(土司)에게 전달한 메시지다. 목씨 토사는 패방을 짓고 순종했다. 사방에 성벽을 쌓으면 곤란할 곤(困)이 되고 포위당한 형국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웃지 못할 사연이다.


목부 옆에 사방가(四方街)가 있다. 사방으로 통하는 광장이다. 골목이 크게 여섯 갈래다. 어디로 가더라도 사방가 팻말만 찾으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바깥으로만 나가지 않으면 된다. 광장은 언제나 만원이다. 때때로 할머니들이 나와서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동파무(東巴舞)라 부른다. 하얀 윗옷에 붉은 조끼를 걸치고 띠를 엇갈려 두른다. 하얀 주름치마를 입는데 아랫단과 허리는 파랗다. 창공을 수놓는 설산을 옮겨놓은 듯하다. 단순한 리듬과 가벼운 발동작만으로 추는 춤에 어울리면 관광객도 금세 한마음이 된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문자, 나시족 동파문

나시족은 상형문자인 동파문(東巴文)을 사용한다. 고성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상형(象形)으로 뒤덮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눈에 봐도 뜻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친근하다. 동파문과 한자를 함께 적은 담장이 많다. 산과 강처럼 자연이나 동식물도 보면 그냥 알게 된다. 오른쪽이나 왼쪽도 그렇다. 계단에 발을 걸치고 있으면 오른다는 뜻이다. 감정이나 활동도 눈여겨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남자는 그냥 맨머리이거나 모자를 쓴다. 여자는 꽃을 쓰고 있는 듯하다. 남자와 여자가 손을 맞잡은 자세는 무얼까? 목을 빼고 들여다봤더니 생각이나 의견인 '의(意)'다. 손을 맞잡아야 ‘그 어떤’ 마음이 생긴다는 말인가? 알쏭달쏭한 경우도 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영문 알파벳 ‘피(P)’ 모양의 글자가 있다. 사랑한다는 말이다. 동행한 사람에게 알려줬더니 ‘깃발’ 모양이라고 웃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자는 다 똑같다는 말까지 한다. 웃겼으나 웃을 수 없다.

동파문을 두루 살펴보면 깃발은 아니다. 여자의 불룩한 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임신하다’라는 말이다. 아마 핏줄을 뜻하는 듯하다. '피(P)'는 사랑의 씨앗으로 읽힌다. 동파문은 모양새가 예뻐 캐릭터 상품으로 제격이다. 딸랑 소리 나는 장식용 풍경은 선물용으로 좋다. 고성 어디를 가도 눈에 보인다.


10년 전만 해도 고성에 종이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수공으로 만드는 제지 기술은 국가무형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엽서나 노트, 사전을 사면 할아버지가 직접 문자를 써주고 낙관도 찍어줬다. 연로한 할아버지의 유산을 아들이 전승하고 있었다.

이제 제지 공장은 온데간데없다. 소문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사망했고 공장은 고성 밖으로 옮겼다. 대신에 고성 곳곳에 동파지방(東巴紙坊) 가게가 생겼다. 종이 재질을 만져보니 동파지가 맞다. 문화유산이 사라지지 않아 다행이다. 사전을 보고 그리는 수준이긴 해도 동파문을 써준다. 상형은 그만큼 그리기 쉽다.


사방가에서 동쪽 골목으로 가면 대석교(大石橋)가 나온다. 고성 밖 북쪽에 흑룡담(黑龍潭)이 있다. 호수에서 흘러나온 도랑이 옥하(玉河)다. 고성으로 들어온 후 사방가 앞에 이르러 ‘니은(ㄴ)’ 자로 꺾인다. 다시 ‘기역(ㄱ)’ 자로 몸을 돌려 고성 밖으로 가는 도랑이 중하(中河)다. 대석교 아래로 중하가 흐른다. 봉긋한 다리는 좁은 편인데 왕래가 많아 복잡하다. 티베트 승려들이 지나다니고 모델 차림의 아가씨가 촬영을 하고 있다. 도랑 옆으로 식당과 카페가 줄을 섰다. 음악이 도랑까지 흘러나오고 손님으로 늘 북적거린다.

나시족 전통 요리 식당이 있다. 대석교에서 몇 발자국 거리의 소석교에 위치한 아마이(阿媽意)다. 1938년에 나시족 할머니가 처음 문을 열었고 3대째 운영 중이다. 후야오방 전 총서기와 판첸라마 10세도 방문했다고 자랑한다. 요리를 맛보면 나시족 입맛이 얼마나 정갈하고 담백한지 감탄하게 된다. 짜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을 따로 할 필요도 없다. 분위기도 포근하고 서비스도 다정하다. 2층까지 금방 찬다.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아마’는 중년의 여성을 이르니 아주머니다. ‘이’는 존칭어다. 그러니 ‘아주머님’이다. 곧 엄마 같은 손길로 만든 맛이라는 자부심이다.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하다. 육해공 재료를 나시족 전통 입맛에 맞게 요리한다. 채소와 버섯이 함께 어울린 다양한 요리가 있다. 두 번 가서 여러 요리를 마주했는데 새우 요리가 인상 깊다. 접시와 맞춘 상차림은 사진부터 찍게 만든다. 기분 좋은 안주다. 청보리로 빚은 칭커주(青稞酒)와 샹그릴라 맥주와 곁들이면 여행 기분에 꿀이 쏟아진다. 세상 다 가진 듯하니 ‘나시족 최고’라 할 밖에!

동양의 베니스? 리장은 리장일 뿐

2007년에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을 들고 갔다. 정보가 맞지 않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코멘트가 하나 있었다. ‘혼자 와서 둘이 손잡고 나가는 곳’. 낭만이 뚝뚝 떨어지는 관광지라는 말을 이처럼 로맨틱하게 쓸 수 있나 감격했다.

도랑 옆 카페나 식당에 앉아 있으면 지나는 사람 모두 연인처럼 보였다. 어둠이 몰려오면 홍등이 불을 밝히고 어느새 야릇한 밤이 기회의 선물로 당도한다. 세월이 흘러도 야경은 빛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농염한 색감이다. 그렇지만 그 ‘둘’을 이루기가 어찌 쉽겠는가? 손잡으면 ‘마음’이라는 동파문을 반추할 따름이다.

도랑에서 소원을 빌어도 된다. 초가 활활 타오르는 연꽃등을 판다. 도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서 물위에 살짝 놓으면 된다. 10위안이니 비싸지 않다. 마음속 소원을 담는다. 너도나도 줄을 서서 기다린다. 평소에 없던 소원이 리장에 오면 갑자기 생긴다. 다리 아래를 지나 등이 사라지는 시간이 저마다 다르다. 물살이 느려 등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몇 분 정도 걸린다. 등이 사라질 때까지 두 손을 모으고 너도나도 기도한다.

대석교 위에서 사방가 쪽으로 바라보면 얕은 산이 보인다. 사자가 잠자는 모양이라 사자산이다. 꼭대기에 만고루(萬古樓)가 있다. 사방가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간 후 계단 따라 오른다. 언덕에 빈틈없이 카페와 식당, 숙소가 즐비하다. 낮이나 밤이나 고성 전체를 조망하기 좋다. 명당이라 대체로 비싼 편이다. 언젠가는 한번 꼭 예쁜 객잔을 찾아 하룻밤 묵고 싶다.

리장에 처음 갔을 때 만고루 언덕의 한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창문 밖으로 고성을 조망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풍경 한 쌍이 역광으로 빙글빙글 돌며 간지러운 소리를 냈다. 오후의 햇살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 지날 동안 고성 분위기를 가슴에 담고 또 담았다. 리장고성에 갈 때마다 꼭 언덕 위에 올라 시간을 보냈다.


언덕 끝에 단골로 가는 카페가 있다. 동파관경대(东巴观景台)라 쓴 홍등이 바람에 흔들리며 줄줄이 걸려 있다. 최고의 고성 조망을 자랑하는 룽센주바(榮先酒吧)다. 길 바로 옆이라 찾기 쉬운데 이상하게 지도 검색에 잘 나오지 않는다. 낮에는 음료나 커피, 차를 팔고 밤이 되면 맥주와 칵테일을 파는 술집으로 변한다. 그냥 술집이 아니라 라이브 카페로 변모한다. 아마추어 가수가 나오는데 꽤 잘 부른다. 노래 신청도 받는다. 깊어가는 야경을 보며 차나 맥주를 마시면 고성을 찾은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북문 옥하광장에서 바라본 야경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누군가는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타이완 주펀(九份)에 가도 듣는 이야기다. 감독이 직접 말하지도 않았고 믿기도 어렵다. 두 곳 모두 영화 속 어딜 닮았는지 모르겠다. 동양의 베니스라고도 한다. 그런 분위기라고 언급하는 관광지가 여러 곳이다. 다 잡담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장은 나시족의 고유한 터전이다. 동파문화의 산실이며 최고의 낭만을 선사한다. 비교 대상이 아니다.


옥하광장 구석에 마부와 말 조각상이 있다. 푸얼차(普洱茶)를 티베트 고원으로 유통하는 차마고도 노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푸얼에서 집산한 차는 북쪽으로 올라와 다리를 지나 리장에 이른다. 다시 샹그릴라와 더친을 거쳐 티베트로 간다. 윈난 일대에 말을 이끌고 오가는 마방을 위한 역참이 많다. 차마고진(茶馬古鎮)이라 부른다. 리장고성에는 관청이 위치했다. 역참이던 곳은 고성에서 북쪽으로 약 9㎞ 떨어져 있다. 수허고진(束河古鎮)으로 간다.

소박한 차마고도의 역참, 수허고진

고진 입구에 도착한다. 아침 햇살이 정문에 강한 빛을 뿌린다. 수허는 나시족 말로 사오우(紹塢)라 한다. 마을 뒤에 취보산(聚寶山)이 있는데 봉우리가 층을 이루고 있어 꽤 높다. 산 아래 형성된 마을이란 뜻이다. 그냥 얕은 언덕이다. 나시족이 처음 이주해 거주한 지역으로 역참이 자연스레 형성됐다. 고성이 신도시라면 이곳은 구도시라 할 수 있다. 고성이 화려하다면 고진은 소박하다. 점점 고성을 닮아가는 듯해 안타깝기는 해도 본연의 멋은 여전하다.


정문을 통과하면 차마광장(茶馬廣場)이다. 상품 파는 가게에 걸린 도안이 기괴하다. 휴곡투서(休曲斗署)라 부른다. 리장 일대에 흔하게 출몰한다. 나시족은 티베트 원시종교인 뵌교(苯教)의 영향을 받은 동파교를 신봉한다. '동파'는 민족문화에 대해 지혜를 지니고 전승하는 성직자를 말한다. 시조는 신화로 등장한다. 천상에서 어머니 겨드랑이에서 태어난 티바세라(Ti-mba shera·丁巴什羅)는 인간 세상의 부름을 받았다. 이복형제인 인간과 뱀이 불화가 생겨 전쟁이 일어났다. 티바세라가 대붕(大鵬)을 보내 도왔다. 휴곡투서도는 대붕이 뱀을 물어뜯고 있는 그림이다. ‘휴곡’이 대붕이고 ‘서’가 뱀이다.



한가로이 터덜터덜 둘러본다. 크지 않은 마을이며 골목도 좁지 않다. 아침 햇살이 환하게 비추는 골목에 홍등도 함께 빛을 반사한다. 유흥가 같은 고성을 벗어나니 호젓한 고진이 너무 여유롭다.

차마고도가 그 길을 잃어버려 기억에 없듯 북적거리던 역참의 영화도 사라졌다. 관광객이 대신한다. 노새 타고 마을을 둘러보라 홍보하고 있다. 의성어 광당광당(咣当咣当)이 리드미컬하다. 노새의 발굽 소리에 맞춰 덜거덕거리며 고진을 여행하라는 말이다. 역참을 떠나 차마고도 행로를 시작하는 행렬이 떠오른다. 고진 지붕과 풍경 뒤로 설산이 손아귀에 잡힌다. 마방의 꽁무니를 쫓아간다. 발품은 이제 설산으로 향해간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