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발등' 교육부 "학사유연화, 계약학과 규제 해소"...현장선 "능사 아냐" 우려도

입력
2022.06.1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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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후원하는 '계약학과' 규제 대거 해소
복수전공 안 해도 '반도체 마이크로 디그리' 부여 등
교육 현장선 '인재 대기업 쏠림', '연구 부실' 우려

교육부가 반도체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기업의 수요를 반영하는 계약학과를 증설하고, 최소 2~3개의 첨단기술 관련 과목만 수강해도 '마이크로 디그리(Micro degree·학점당 학위)'를 부여하는 학사제도 유연화를 검토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뒤, 가장 빠르게 산업 현장에 반도체 인력을 내보낼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다만, 대학 교육 현장에선 인재의 대기업 쏠림 현상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교육부 "반도체 인재 육성 위해 규제 과감히 철폐"

14일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최한 '반도체 전문인력 육성을 위한 교육 개혁 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장미란 교육부 산학협력정책관 직무대리는 "대학 정원 증원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놓고 현장과 관계부처의 의견을 들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 등 첨단학과와 관련해 △대학 정원의 20% 이내로 '정원 외' 학생을 뽑을 수 있는 계약학과 정원을 대학 정원의 50%로 확대 △산업체와 계약학과를 설치한 교육기관이 50㎞ 거리 내에 위치하도록 한 '권역 제한' 해제 △산업체 전문인력이 교원으로 활동한 후 다시 산업체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관련 학문을 복수전공으로 택하지 않더라도 이수한 강의 수에 따라 '마이크로 디그리'를 부여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장 직무대리는 "반도체는 전자공학, 반도체학과뿐 아니라 화학공학, 기계·산업 공학 등 여러 관련 학과가 있다"며 "적게는 2, 3과목, 많게는 부전공을 통해 반도체를 공부하는 학생을 내년, 내후년부터 배출할 수 있도록 학사제도를 유연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했다.


반도체 관련 교수들 "계약학과 증설만이 정답은 아냐"

기업의 자금 지원을 받아 학생 선발과 교육과정을 대학과 기업이 함께 짜고, 졸업생을 기업에 취업시키는 구조인 계약학과는 기업의 인력 수요를 반영해 첨단산업의 '인력 미스매치'를 해결할 대안 중 하나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대학 교수들은 "계약학과 증설이 꼭 정답은 아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우선 거론된 건 반도체 인력의 대기업 쏠림 현상이다. 수십억 원에 이르는 반도체 설비를 지원하며 계약학과를 세울 수 있는 건 주로 대기업이다. 최기창 서울대 산학협력중점교수는 "계약학과는 스폰서가 있어서 수요처에서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금을 대고 인력을 공급받으려 한다"며 "우리 산업 전반에서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는 대기업 쏠림 때문에 인력 공급을 못 받는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인력이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공급되도록 "저변이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대학의 연구 기능이 약화되는 측면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계약학과를 신설한 포스텍의 이정수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보통 대기업이 학부 졸업생을 요구해서 반도체 계약학과는 대부분 대학원 과정이 없다"며 "그렇게 되면 전임으로 계약학과에 온 교수는 논문을 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방대를 포함한 여러 대학이 '반도체 교육 컨소시엄'을 꾸려 인력을 양성하는 '혁신공유대학사업'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당장의 정원 확대보단 반도체 연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발제자로 나선 김성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국내에 500명 정도의 반도체 전공 교수가 있는데, 그중 절반은 (연구비 부족으로) 연구를 포기했다"며 연구비 지원 확대를 통해 석·박사급 연구자와 학부생이 늘어나는 '선순환'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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