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환율 방어 카드가 없는 정부의 계속된 구두개입 ‘약발’이 들지 않으면서 원·달러 환율이 거침없이 치솟고 있다. 뛰어오른 물가를 잡기 위해 미국이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면서 원화 약세가 계속되는 양상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현실화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13년 만에 1,300원을 넘어설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7.5원 오른 1,291.5원에 개장했다. 이후 환율은 1,292.5원까지 뛰며 지난달 12일 세운 장중 연고점(1,291.5원)을 단숨에 넘어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았던 2020년 3월 19일(장중 1,296.0원) 이후 약 2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후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4원 오른 1,286.4원에 마감했다.
계속된 고환율 우려에 외환 당국이 올해 들어 벌써 세 차례 구두개입에 나섰으나, 원·달러 환율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전날 방기선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필요시 즉시 시장 안정 조치를 가동하겠다”고 밝혔으나 환율 상승세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4월 28일에도 외환 당국은 “급격한 시장 쏠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장 안정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일 환율은 전날보다 7.3원 오른 1,272.5원에 장을 마쳤다.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요인이 원화 약세를 이끄는 만큼 구두개입이 사실상 ‘공수표’에 머물고 있다는 분석이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원화 약세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와 미국의 긴축 기조 등 대외 악재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당장 마주할 고비는 14~15일(현지시간) 예정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결과다. ‘물가와의 전쟁’에 나선 미국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높일 경우 상당한 충격을 몰고 올 수 있다.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하면 미국의 기준금리(1.50~1.75%) 상단은 한국의 기준금리와 같아진다.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거 유출되면서 원화 약세 속도가 가팔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300원까지 오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선을 넘긴 건 2009년 7월 13일(1,315원)이 마지막이었다.
가뜩이나 국제 에너지·곡물가격이 치솟은 마당에 고환율 여파까지 겹치면 무역수지(총수입-총수출) 적자 행진 역시 계속될 공산이 크다. 수입액 증가폭이 수출을 웃돈 탓에 연초부터 이달 10일까지 벌써 138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무역수지 적자는 경상수지에도 악영향을 줘 국가신용등급 하락 등을 불러올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투자자금 이탈 우려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이라며 “시장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