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본부장은 14일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열린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파업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는 원유에서 추출하는데, 나프타로 에틸렌을 생산해 내는 NCC는 제철소로 치면 철광석에서 주철을 만들어 내는 '고로'(高爐)와 마찬가지다. 가동 중단 후 재가동이 쉽지 않고 비용 손실도 크다. 즉, NCC가 멈추면 유화산업 전체가 사실상 중단된다는 얘기다. 김 본부장은 "(NCC 가동이 중단되면) 하루 평균 3,000억 원 이상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화물연대가 7일 파업을 시작한 이래 3, 4일 지나면서부터 일부 석유화학 회사들이 공장 가동 시간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하면서 현재 10%의 물량만 출하 중이다. 김 본부장은 "대형 8개사 기준으로 일평균 600억 원가량의 매출 손실이 발생해 누적 5,000억 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된다"며 "전체 32개사 기준으로 보면 피해 금액이 4배 수준까지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화물연대 총파업이 8일째 이어지면서 물류 피해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석유화학을 비롯해 철강·시멘트·자동차 등 주요 업종뿐 아니라 중소기업까지 영향권에 들어오고 있다.
화주협의회는 이날 간담회에서 "전국 주요 항만과 국가 주요 생산시설들이 일주일 넘게 마비됐다"며 "전국의 사업장에서 수출 물품의 선적이 취소되고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일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멘트업계는 화물연대 파업 초기부터 타격을 입었다. 시멘트 주요 생산 시설인 '킬른'(소성로) 45기 중 2기가 가동 중단됐고, 주말이면 절반이 멈출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민 한국시멘트협회 이사는 "시멘트업계의 어제자 출하량은 2만 톤대로 평시 출하량의 13%를 출하하는 데 그쳤다"면서 "추가 차질은 15만6,000톤으로 약 145억 원의 손실이 하루 만에 발생하면서 파업 시작 이후 지금까지 손실액이 912억 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자동차업계에선 부품업계 줄도산을 우려하고 있다. 완성차업체의 생산·출하 차질이 확대되면 부품업계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이날 기준 국내 완성차업계에서 5,700여 대의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 윤경선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실장은 "현재 일부 업체에 한해 발생하고 있는 생산 차질 문제가 확산하면 부품업계 줄도산도 불가피하다"며 "하루빨리 상태가 해소돼 정상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철강업계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철강업계 출하 피해 규모(12일 기준)는 7,000억 원(45만 톤)이지만, 이는 주요 업체 5곳 기준이다. 한국철강협회가 대상 기업을 2곳 늘리고 기간을 13일까지 확대하니 피해 규모는 72만1,000톤으로 조사됐다. 철강 제품을 재가공해 납품하는 중소ㆍ중견기업까지 포함하면 피해 규모가 더 커진다.
중소기업이나 농축산업계 피해도 적지 않다. 화주협의회는 "중소기업에는 한두 건의 선적 취소도 기업의 존폐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라며 "간신히 선박을 확보했는데도 항만까지 운송해 줄 화물차를 배차받지 못해 계약이 취소되고 중요한 바이어들과의 거래가 중단되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통관을 마친 원자재들이 공장에 제때 반입되지 않아 납기를 놓치거나 양파, 양상추나 청과류 선적이 늦어져 막대한 보관 비용이 들거나 버리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화주협의회는 "화물연대가 먼저 대화의 장으로 돌아와 적정한 운임과 제도 운영에 대한 합리적 방안을 찾아 나가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