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국방부 관계자는 이렇게 실토했다. 북한에 제대로 ‘뒤통수’ 맞았다는 것이다. 과거 6차례 핵실험에서 한미 당국이 잔뜩 벼르면 북한은 뜸 들이고, 반대로 긴장을 풀면 핵 버튼을 누르는 패턴이 적지 않았다. 아직 속단하긴 이르지만, 올해 들어 7차 핵실험 경보가 잇따르자 북한이 속도 조절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방부는 2014년 초 풍계리 현지 상황을 이례적으로 실시간 중계했다. ‘갱도 입구에 가림막을 쳤다’, ‘안으로 전선을 깔았다’, ‘흙을 되메웠다’며 한 달가량 연일 호들갑을 떨었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 때 허둥지둥했던 학습효과 때문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끝내 도발하지 않았다. 대신 다양한 종류의 탄도미사일을 쏘며 한미 경계태세를 시험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에 나선 건 2년이 지나서였다. 북한의 기습적인 도발에 군 당국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2014년과 비슷한 흐름이다. “북한의 결단만 남았다(박진 외교장관)”, “준비 마쳤다, 언제라도 감행할 것(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며칠 이내에 7차 핵실험 우려한다(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 등 한미 고위당국자들이 앞다퉈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그러자 북한은 슬쩍 ‘핵’이라는 표현을 빼고 있다. 8~1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도 12일 당 비서국 회의에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외교 소식통은 14일 “핵실험 징후는 분명하지만 과연 당장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7차 핵실험의 초점을 ‘전술핵’에 맞추고 있다. 핵무기 소형화, 경량화를 시험하는 최종단계라는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 20기와 45~55개 탄두를 만들 핵물질을 갖췄다(13일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능력을 불완전하게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3, 4차 핵실험으로 전술핵 수준의 폭발력은 이미 넘어섰다. 더구나 2017년 6차 핵실험 직후 김 위원장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착용 수소폭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며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추가 핵실험의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파키스탄의 경우 1998년 사흘간 6차례 동시다발 핵실험 이후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에 오른 전례도 있다.
일각에서는 국제사회와 핵 합의가 틀어진 이란의 ‘대리 실험’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아직 핵무기가 없는 이란을 대신해 북한이 핵실험에 나선다는 것이다. 과거 핵실험 때 참관단이 풍계리를 찾을 정도로 이란과 북한은 각별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북한만 놓고 보면 추가 핵실험이 군사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북한 핵실험은 핵능력 고도화와 더불어 정치적 노림수가 다분한 빅 이벤트다. 이달 29일 나토 정상회의, 내달 4일 미국 독립기념일 등 핵실험의 효과를 극대화할 주요 정치일정을 앞둔 만큼 핵실험은 북한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카드다.
다만 북한이 6차례 핵실험을 여름에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1차(10월), 2차(5월), 3차(2월), 4차(1월), 5ㆍ6차(9월) 등 계절적으로 여름은 피했다. 이달 말부터 북한 장마철인 점을 감안하면 굳이 현 시점을 택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시진핑 주석 장기집권을 확정할 10월 중국 당 대회 이후 11월 미 중간선거 직전이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을 향한 충격파를 증폭시킬 적기일 수 있다.
북한은 코로나19 방역을 절대적으로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 중국이 극구 만류하는 터라 북한은 선택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한미일 3각 협력 심화에 맞서 중러 공조가 강화되는 대결구도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이에 올라타야 할 북한이 최대 우군 중국과 등을 돌리는 건 자책골이나 다름없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북중 접경에서 불과 100㎞ 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