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능선 끝 아득한 물길... 2000년 닳은 왕후의 그리움

입력
2022.06.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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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김해 분산성과 금관가야 유적

김해는 금관가야의 땅이다. 건국 설화에 따르면 가야 아홉 마을의 우두머리가 구지봉에 올라 ‘구지가’를 부르며 춤을 추고 놀다가 하늘로부터 황금알을 얻었다. 그 알에서 사내아이 여섯이 태어났다. 가장 먼저 나온 수로를 비롯해 이들 여섯은 각기 가야의 왕이 됐다. 서기 42년 수로왕이 건국한 금관가야는 육 가야의 맹주로 활약하다 법흥왕 19년(532) 신라에 병합됐다. 김해 옛 도심에 수로왕과 수로왕비 무덤을 비롯한 유적이 몰려 있다.


2000년 전 시간 속으로 금관가야 산책

김해 가야 유적은 대중교통 접근이 뛰어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부산김해경전철 수로왕릉역에 내리면 봉황동유적과 수로왕릉이 가깝고, 박물관역에 내리면 대성동고분군과 국립김해박물관, 구지봉과 수로왕비릉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두 역은 바로 인접해 있다. 수로왕과 왕비릉 사이는 약 1.2km, 시간을 여유롭게 잡으면 걸어서 모두 돌아볼 수 있는 거리다.

가장 북측에 있는 수로왕비릉부터 간다. 입구로 들어서면 나지막한 산등성이 경사면에 커다란 봉분이 위엄 있게 터를 잡았다. 울창한 솔숲이 둥그렇게 감싸고 있어 아늑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능의 전면은 장대석으로 축대를 쌓았고 주위에는 얕은 돌담을 둘렀다.


능 앞에는 조선 인조 25년(1647)에 세운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駕洛國首露王妃 普州太后許氏陵)'이라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수로왕비 허황옥(許黃玉)은 세상을 뜨기 전 열 아들 중 둘에게 자신의 성을 따르게 했다. 그로 인해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와 허황옥에 뿌리를 둔 김해 허씨는 관례적으로 혼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능 바로 아래 보호각에는 파사석탑(婆娑石塔)이 세워져 있다. 왕후가 인도 아유타에서 시집올 때 가지고 왔다는 오층탑이다. 기나긴 항해에서 바람과 풍랑을 잠재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흔히 보는 사각 지붕의 석탑과 달리 둥그런 돌을 층층이 올려 놓은 모양이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틈새가 핏줄처럼 붉은 빛을 띠고 있다. 성분을 분석한 결과 국내에는 드물고 인도에는 흔한 돌이라 한다. 가야가 멀리 인도까지 교류했다는 근거로 얘기되고 있지만, 수로왕의 재위 기간(서기 42~199년)이나 왕후의 나이(157세)만큼이나 증명하기 어려운 가설이다.

거북 몸통에 해당하는 구지봉은 머리 격인 수로왕비릉과 산책로로 연결돼 있다. 가야의 건국 설화가 서린 산이지만 소박하다 싶을 정도로 아담하다. 솔숲 사이로 산책로를 내고 공원으로 꾸몄는데, 봉우리 꼭대기는 원형으로 텅 비어 있다. 바로 하늘에서 알이 내려왔다는 장소다.



신비로운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보태지고 과장된다. 특히 김해 김씨 후손에게 신성시되는 이곳에는 설화를 바탕으로 돌로 제작한 커다란 알이 있었지만 유적지의 조건에 맞지 않아 ‘가락국 태조 탄강지’라는 작은 비석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했다. 한쪽 귀퉁이에 고인돌 하나가 서 있는데, 상판에 한석봉의 글씨로 추정되는 '구지봉석(龜旨峯石)'이 새겨져 있다.

봉우리에서 능 맞은편으로 내려가면 국립김해박물관이 있다. 1998년 개관한 가야사 특화 박물관이다. 낙동강 하류의 선사 문화부터 가야의 성립과 발전 과정 등을 전시하고 있다. 신화가 아닌 역사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는 공간이다. 원형 울타리에 사각의 건물, 철을 기반으로 성장한 가야의 특징을 담은 조형물이 이채롭다.

박물관에서 하천을 따라 조금 내려오면 대성동고분군이다. 여러 기의 대형 봉분이 몰려 있는 타 지역과 달리 길이 300m, 높이 20m 정도의 구릉지대 자체가 거대한 무덤군이다. 1~5세기 지배 집단의 무덤 자리로 지금까지 발굴된 것만 304기라고 한다. 고인돌을 비롯해 널무덤(토광묘), 덧널무덤(토광목곽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등 여러 형식의 무덤이 발견됐다. 삼한시대 구야국부터 금관가야 시기까지의 무덤들이다.


무덤 자리를 표시해 놓은 고분군은 산책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둘러볼 수 있다. 잔디로 덮여 있어 보기에는 시원스럽지만, 한낮 땡볕을 피하려면 모자나 양산이 필수다. 북측 귀퉁이에는 29호분과 39호분을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지붕과 유리로 둘러진 야외전시실에 들어가면 가지런하게 정돈된 청동솥과 토기 등을 볼 수 있다. 금관가야의 무덤 형식도 한눈에 파악된다.

대성동고분군은 시민공원인 수릉원을 사이에 두고 수로왕릉과 이어진다. 고즈넉한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정문 격인 숭화문이 등장하고, 홍살문과 가락루를 통과하면 낮은 담장 안에 수로왕릉이 널찍하게 터를 잡고 있다. 봉분 좌우로 문인석과 무인석, 여러 동물 석상을 세워 웅장하고 짜임새 있지만, 사방이 평지라 왕비릉에 비하면 아늑함은 덜한 편이다.


‘가락국수로왕릉(駕洛國首露王陵)’이라 새긴 묘비 역시 인조 때 묘를 정비하며 세웠다. 뒤편으로 돌아가면 묘지인데 왕궁인 듯 울창한 숲이 후원을 이루고 있다. 경사가 없는 평평한 숲길 산책로에 가지를 늘어뜨린 거목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2000년 전 가락국의 왕족처럼 잠시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수로왕릉과 또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봉황동유적지가 있다. 대성동고분이 지배계층의 유적이라면 이곳은 금관가야의 생활 유적지다. 고인돌, 조개무지, 항구시설과 토성 등이 발굴돼 청동기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 복합 유적의 성격을 띠고 있다. 국내 최초로 불에 탄 쌀(탄화미)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유적 끝자락에 패총전시관이 있다. 실제 땅을 세로로 잘라 유리를 통해 단면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조개껍데기가 퇴적층처럼 촘촘하게 층을 이루고 있다. 패총을 제외한 유물은 모두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발굴 당시의 유적을 토대로 지은 가옥과 망루 등을 재현해 놓았지만 가락국의 신비를 느끼기는 힘들다. 대신 마삭줄과 꽁짜개덩굴 등 넝쿨식물로 뒤덮인 산자락과 울창한 수목이 시원한 휴식을 선사한다.


허황옥의 그리움이 서린 분산성

가야 유적이 옹기종기 자리 잡은 원도심 동쪽에 분성산(327m)이 우뚝 솟아 있다. 달리 말하면 김해 시내가 시원하게 조망되는 곳이다. 정상부는 길이 약 900m, 폭 8m 정도로 쌓은 분산성이 타원형으로 감싸고 있다. 수직에 가까운 석벽의 높이는 3~4m에 이른다. 성안에 세워진 사적비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박위가 옛 산성에 의거 수축했으며,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고종 8년(1871) 다시 고쳐 지었다고 한다. 처음 쌓은 시기는 삼국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여러 곳에서 등산로가 나 있지만 지역민이 아니면 찾기가 쉽지 않다. 외지인은 산성 서편 가야테마파크로 가면 가장 쉽다. ‘가야 체험’을 앞세운 놀이공원이지만, 실제는 공중 자전거와 집라인 등 모험 놀이시설을 운영하고 있어 성격이 다소 모호하다.

테마파크에서 산성까지는 20분 정도면 너끈히 갈 수 있다. 능선에서 출발하는 격이라 오르막도 심하지 않다. 산성 안내판에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거의 다 복원해 놓았다고 쓰여 있다. 그대로라면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을 듯한데 실제는 간단하지 않다. 성벽 안을 따라 돌던 산책로는 때로 중간에서 끊어지거나 성밖으로 연결된다. 대신 성안에도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어서 걷기에 불편하거나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성벽의 형태를 가장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는 곳은 서문 쪽이다. 지형을 따라 부드럽게 휘어진 석성 너머로 김해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산등성이로 오르는 성벽 끝자락은 멀리 낙동강 물길과 가상의 선으로 연결된다. 해질 무렵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라 김해에서 ‘인생사진 성지’로 꼽힌다.

성안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숲이 울창하고, 기암도 꽤 흩어져 있다. 그 사이에 봉수대 1기가 복원돼 있고, 뒤쪽 큰 바위에는 흥선대원군이 썼다는 ‘만장대(萬丈臺)’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1만 길이나 되는 높은 곳에서 왜적을 막아내는 곳이라 내린 칭호라 한다.

산성 한가운데에 특이하게도 해은사(海恩寺)라는 사찰이 둥지를 틀고 앉았다. 허왕후가 인도에서 건너올 때 풍랑을 막아준 바다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을 담아 지은 절이라 자랑한다. 절 입구에 ‘가락고찰(駕洛古刹)’이라 크게 새겨놓은 이유다. 사찰을 대표하는 건물도 대웅전이 아니라 수로왕과 왕비의 영정을 봉안한 대왕전이다. 뒤편으로 돌면 암반 위에 또 하나의 파사석탑이 세워져 있다. 수로왕비릉 앞에 서 있는 탑의 현대식 모형이다.




이곳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드넓은 김해평야 사이로 낙동강 하구 물길이 손끝으로 만져질 듯 아른거린다. 시원스럽고도 아련한 풍광은 자연스럽게 가락국과 허황옥을 소환한다. 김해시 홈페이지에는 허황옥이 이곳에 올라 노을을 바라보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지 않았을까라는 감성 스토리가 올라 있다. 바위에 걸터앉아 멍하니 응시하고 있노라면 터무니없는 상상은 아닌 것 같다.

김해=글·사진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