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이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지난달 28일, 정정훈 촬영감독은 즉각 축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박 감독 역시 현지에서 답장을 했다. "송강호 배우와 나란히 수상하게 되어 너무 재미있다. 좋았다"는 내용이었다. 정정훈 촬영감독은 박 감독이 새 영화가 많은 관객들과 만나길 고대하고 있다며 웃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매우 깊은 인연을 자랑한다. '올드보이'를 시작으로 '친절한 금자씨' '박쥐' '스토커' 등 무려 일곱 번이나 호흡을 맞췄다. 박찬욱 감독의 머릿속을 찍어낸 듯 화면에 구현하는 정정훈 촬영감독은 이미 해외에서도 유명인사다. '좀비랜드: 더블 탭'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언차티드' 등 내로라하는 작품에 참여했고,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오비완 케노비'에서도 실력을 발휘했다.
정정훈 촬영감독은 '오비완 케노비'를 통해 성덕(성공한 덕후)이 됐다. 사실 그는 '스타워즈'의 오랜 팬이다. '오비완 케노비'는 어둠과 절망이 팽배한 세상, 모두를 지키기 위해 잔혹한 제다이 사냥꾼에 맞선 오비완 케노비의 목숨을 건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몰락 이후 은둔의 삶을 살고 있던 그가 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는지가 그려진다.
"영화학교 시절부터 교과서처럼 '스타워즈'를 봤다"는 정정훈 촬영감독은 14일 오전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오비완 케노비'의 주요 스태프로 참여하게 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의 최전방 일하는 것에 설레고 얻는 것도 많은 작업이었어요. 특이하고 희한한 경험을 많이 했거든요."
'희한한 경험'이란 뭘까. 그를 놀라게 한 건 뭐니뭐니 해도 '볼륨 시스템'이다. "과거엔 SF영화라 하면 무조건 블루 스크린이나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를 했죠. 배경에 뭐가 심어질지 모르게 찍는 심심한 촬영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카메라 안에 직접 담기는 게 있으니까, 카메라가 움직이는 거에 따라 배경도 자연스레 바뀌고 이런 걸 겅험하니까 놀라웠습니다. 배우들도 이젠 실제 자기 눈앞에 보이는 배경에서 심도 있게 연기할 수 있고요."
정정훈 촬영감독은 "(볼륨 시스템이) 어떨 때는 잘못 촬영하면 실제처럼 안 보여서 테스트를 많이 하고 관객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신경을 많이 썼다"고 전했다.
이번 작품에서 또 한 가지 그의 숙제는 고전적 느낌을 살리면서도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만 들어도 쉽지 않았을 작업이었음이 분명했다. "저를 기용한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 '스타워즈'에 대해 너무 얽매이지 않고 드라마 위주로 자유롭게 표현하길 바란 거였어요. 그간의 룰들이 알게 모르게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기존 '스타워즈' 의상이나 배경에서는 벗어나지 않아야 했기에 전편 룩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변형하도록 노력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배경이 우주여서 그렇지, '스타워즈'는 현실 어느 상황에서도 매치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미래 얘기이고 우주 배경이기 때문에 이래야 한다는 걸 없애려고 노력했죠."
그는 자신에게 '한국인 최초' 같은 수식어는 필요하지 않을 거 같다고 말했다. 국경을 넘어 모두 다 같은 영화인일뿐이라는 의미다. 이미 한국의 콘텐츠는 전 세계에서 높은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정정훈 촬영감독 역시 현장에서 이를 깊게 실감했다. "예전엔 김치, 불고기, 강남스타일 같은 것들을 얘기하다가 이제는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하죠. 굳이 '한국 콘텐츠'라고 말하지 않고 '그거 봤나' '그 노래 들었나' 하는 식이니까 제대로 가고 있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