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0대 젊은 층을 기성세대와 구별해 쓰는 용어가 'MZ세대'다. 1980~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안에서도 Z세대는 밀레니얼세대와 또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 바람에 정치인, 기업인, 콘텐츠 제작자 등 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사람들이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애를 태운다.
2006년 디지털마케팅 전문 신생기업(스타트업) 크로스IMC를 창업한 박준영(51) 대표는 최근 독특한 방식을 사용해 Z세대를 분석했다. Z세대의 필수품으로 꼽히는 스마트폰 수백 대를 열어본 것이다. 이를 토대로 그는 최근 Z세대의 스마트폰 앱 지도를 완성해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만든 지도 속에 기성세대가 상상도 하지 못한 Z세대의 놀라운 삶이 들어 있다.
박 대표는 왜 Z세대를 따로 분석하게 됐을까. "디지털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려면 세대별 특징을 잘 파악해야죠. 그런데 Z세대는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이 다른 세대와 확연하게 달라요. 그 이유가 궁금했어요."
이를 위해 그는 Z세대 300명의 스마트폰을 열어 봤다. 이 작업이 힘들었다. "Z세대에게 스마트폰은 일기장 같아요. 절대 공개하지 않죠. 오랜 시간을 투자해 10대부터 20대 대학생과 직장인 300명의 스마트폰 화면을 순간포착(캡처)하는 방식으로 수집해 분석했어요. 이를 건강, 미용, 게임, 금융, 자기개발, 창작, 오락, 쇼핑, 사진, 사회관계망 등 11개 분야로 나눠 스마트폰 앱 지도를 만들었죠."
"Z세대의 스마트폰은 초기화면부터 흥미진진해요." 박 대표가 건네준 캡처 사진을 보니 스마트폰 화면에 글자가 하나도 없다. 각종 앱들을 묶은 그룹명에 글자 대신 이모지라고 부르는 그림으로 된 기호가 가득하다. 그것도 모양이 비슷하다. 심지어 똑같은 모양의 이모지로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경우도 있다.
어떻게 구분하냐는 질문에 박 대표가 웃음을 터뜨렸다. "스마트폰을 일기장처럼 다뤄서 본인 아니면 알아보지 못해요. 자세히 보세요. 색깔이 다르죠?" 실제로 같은 모양의 이모지들은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Z세대는 그림과 색깔까지 그들만의 언어로 사용해요." 남들이 보면 알 수 없지만 자신만의 언어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이어리 꾸미기처럼 스마트폰 화면도 다양한 이모지와 색을 사용해 다채롭게 꾸민다.
Z세대가 소통 도구로 많이 쓰는 앱은 카카오톡, 페이스북보다 '디스코드'다. 카카오톡은 공개대화방에서 특정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 활용하고, 페이스북은 기성세대의 생각을 읽는 도구로 쓴다.
디스코드는 온라인 게임 이용자들을 위한 메신저로, 문자는 물론이고 음성 및 영상 대화까지 가능하다. "디스코드는 음성 대화를 빠르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특히 단체 대화방에서도 특정인하고만 대화할 수 있어요.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죠."
재미있는 것은 오후 10시부터 새벽 3시 사이에 앱을 활발하게 사용한다. "인터뷰를 해보니 남들은 자는 시간에 Z세대는 왕성하게 활동해요."
특히 Z세대가 흥미롭게 사용하는 앱이 '채티'다. 채티는 메신저처럼 대화형으로 구성된 소설 앱으로 10대들이 많이 이용한다. "채티에 올라온 소설 중 80%가량이 기성 작가가 아닌 이용자들이 공동 창작한 작품들입니다. 놀라운 것은 나이를 뛰어넘어 다양한 주제를 다뤄요. 예를 들어 10대들이 공동 창작한 작품 가운데 직장 생활의 애환을 실감나게 다룬 내용이 있어요. 어떻게 경험하지 않은 것을 자세히 썼는지 물어보니 작가들의 대화방에서 직장인 선배들과 대화하며 소설에 반영했더군요. 한마디로 소통을 통해 공감하고 팬덤을 만들 줄 아는 능력이 있어요."
박 대표가 의미 있게 본 것은 '오늘의집', '당근마켓', '스타일쉐어' 앱이다. “Z세대는 이 앱들에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며 자신의 표현 수단으로 사용해요.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드러내는 통로죠. 이때 사진 속 모습이 곱게 화장하거나 예쁜 옷을 입지 않았어도 거리낌없이 드러내요.”
화장 앱도 소통의 도구가 된다. Z세대가 많이 사용하는 앱 중에 '잼페이스'가 있다. 이용자의 화장 취향을 분석해 적합한 미용 유튜버를 연결해주는 앱이다. "Z세대의 90%가 잼페이스를 써요. 잼페이스는 동영상 중에서 특정 부분만 골라 보여주는 기능이 있어요. 예를 들어 여드름 가리는 방법이 궁금하면 긴 분량의 영상 중에 해당 부분만 찾아서 보여주죠."
특히 초등학생들이 잼페이스를 많이 사용한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화장을 많이 하면서 친구들과 퍼스널 컬러 등 화장 관련 대화를 많이 해요. 친구들과 화장 앱을 매개로 소통하면서 올리브영 등 화장품 파는 곳에서 약속을 잡죠. 거기서 친구를 기다리며 잼페이스에서 본 화장품을 체험해요. 소통과 소비가 함께 일어나죠."
Z세대에게 메타버스와 가상현실(VR)은 또 다른 자아를 표출하는 공간이다. 이 안에서 그들은 역할 놀이에 빠져든다. 이때 자신과 완전히 다른 분신을 만든다. "Z세대의 특징 중 하나가 사이버 공간에서 분리된 자아로 살아가는 것이죠. 과거 싸이월드세대는 게임과 커뮤니티 공간에서 최대한 자신과 닮은 분신(아바타)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Z세대는 자신과 완전히 다른 아바타를 만들어요. 아바타의 성별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로봇이나 동물이 되기도 해요."
이렇게 꾸민 아바타에 아낌없는 투자를 한다. "Z세대는 배틀 그라운드 같은 게임을 하면서 아바타를 꾸미기 위해 상당히 많은 돈을 써요. 현실에서는 허름한 운동복을 입고 있어도 아바타에는 돈을 들여 호화롭게 치장하죠.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동경, 욕망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으로 봐요."
박 대표는 Z세대를 관계적 소비에 강한 세대로 꼽았다. "Z세대는 기업이든 사람이든 같은 관심사로 관계가 형성되면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비를 하죠. 그것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구매하는 즉각적 소비를 해요."
대표적인 경우가 채티 앱이다. "채티에서 취향이 같은 작품을 쓰는 작가를 적극적으로 후원해요. 인터넷 라디오 같은 스푼라디오 앱 진행자 중에 Z세에게 월 1억 원 이상 후원받는 사람들이 있어요."
결국 관계적 소비란 취향에 따른 소비로 이어진다. 이때 희소성이 가치를 결정한다. "Z세대들이 한정판 스니커즈 운동화를 구입해서 되파는 행위를 보면 취향과 소비가 묶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것이 특정 주제에 빠져드는 '덕질' 문화로 발전하고, 다시 희소성이 상품 가치를 결정하는 대체불가토큰(NFT)으로 연결되죠."
NFT도 특정 상품을 매개로 커뮤니티가 형성되면서 이 안에서 소통이 일어난다.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클럽'이라는 NFT 상품이 대표적이다. "NFT의 본질은 곧 커뮤니티입니다. Z세대는 NFT 상품을 구입할 때 특정 커뮤니티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인정받기를 원해요. 이를 통해 경제적 성취감을 기대하죠. 이런 것들이 맞물려 하나로 돌아가죠. 즉 소비가 투자인 셈이죠. 기업들이 NFT 상품을 구상한다면 어떤 커뮤니티 형성이 가능할지 생각해봐야 해요."
박 대표는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유아복 업체 베비라에서 일했다. 이후 패션, 유통업체와 홍보대행사 인컴브로더를 거쳐 2006년 크로스IMC를 창업했다. 그동안 애플코리아, SK텔레콤, 한화그룹, HP 등 다양한 기업들의 마케팅 컨설팅을 진행하며 국내에서 디지털마케팅 전문가로 입지를 굳혔다. 최근 스마트폰 앱 지도와 이를 분석한 'Z의 스마트폰'이라는 책도 출간했다.
그는 "Z세대에게 스마트폰은 도구가 아닌 삶의 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Z세대는 스마트폰 없는 삶을 생각하지 못해요. 그만큼 청소년들에게 디지털 생태계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올바른 디지털 교육이 필요해요. 무조건 과몰입을 탓할 게 아니라 스스로 통제하며 건강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학교와 가정에서 적극적으로 안내할 필요가 있죠."
그는 Z세대가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를 바꿀 것으로 본다. "기업은 관계적 소비를 하는 Z세대를 파트너(협력자)로 봐야 해요. 스마트폰을 이용하면서 개인이 1인 미디어로 부상해 영향력이 커졌죠. 기업들은 Z세대가 관심을 갖는 건강, 환경, 에너지 등 다양한 주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 점에서 기업이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영은 미래 소비층을 사로잡기 위한 필수 요건이죠."
현재 많은 기업들이 박 대표와 Z세대를 겨냥한 디지털마케팅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통신, 전자, 시스템통합, 유통, 자동차 등 다양한 대기업들과 협의를 하고 있어요. 모 그룹은 관계적 소비 형성에 필요한 통합 멤버십을 디지털로 만드는 방안을 함께 추진 중이죠."
이에 따라 그는 매달 Z세대의 앱 분석을 통해 스마트폰 앱 지도를 갱신하며 기업들의 디지털마케팅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기업들이 Z세대의 특성에 공명하지 못하면 미래가 불투명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