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4개월 아기가 37시간 동안 비행기에 실려 덴마크에 도착한 직후 사망했습니다. 다른 아이는 도착 직후 병원에 입원했지만 양부모가 단 한번도 찾아오지 않아 다시 혼자가 됐죠. 양부모가 데려간 또 다른 아이는 양부모에게 맞아 죽었습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입양인은 4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친부모를 찾으려 했지만, 입양 기관은 부모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아요.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나요?"
해외입양인 한분영(48)씨는 9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서 파비앙 살비올리 유엔(UN)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을 만나 이같이 호소했다.
한씨가 언급한 사례는 한국에서 '입양'을 이유로 해외로 보내진 영유아들이 실제로 겪은 일이다. 한씨 등 해외 입양인 당사자들이 모여 만든 '입양인국제네트워크'가 추적해 확인한 사실들이다. 한씨도 1974년 생후 3개월차에 덴마크로 보내졌다 한국에 돌아온 입양인 당사자다. (관련기사: 12년째 친부모 찾는 덴마크 변호사… "입양기록, 당사자에게 오롯이 제공돼야")
한씨와 함께 이날 면담에 참석한 신필식 입양연대회의 사무처장, 김도현 뿌리의집 목사 등은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에게 △한국 정부의 과거 해외 입양 진상 조사 등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한씨는 "네덜란드·벨기에·스웨덴·덴마크 등 과거 한국 아이들을 '수용'했던 국가들은 조사를 시작하거나 완료했는데 정작 한국은 가장 큰 규모의 '아이 송출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차원의 진상 조사를 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시민권 취득 절차 없이 입양 보내져 추방되거나 시민권 없이 살아가고 있는 해외 입양인들의 보호 △부모의 사생활을 이유로 한국 입양기관이 입양인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는 입양 기록의 반환에 조사와 권고 등도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씨는 "살아남은 입양인들에겐 최소한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고, 해외로 보내졌는지 입양기관으로부터 입양 기록을 돌려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사무처장은 "과거 한국의 해외 입양은 '버려진 유기 아동'으로 기록하는 등 친가족 기록을 삭제하거나 조작한 경우가 많았다"며 "민간 입양기관이 고비용의 입양 수수료를 받으면서도 양부모의 적격성 심사를 거치지 않고 아이를 보낸 뒤, 입양 후 모니터링도 하지 않았다"고 과거 한국의 해외입양 실상을 구술했다. 신 사무처장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가 사망하는 경우도, 양부모가 아이를 찾아가지 않아 한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먼 나라에 홀로 남겨진 경우도, 시민권이 없어 추방 위기에 떨며 살아온 경우도 빈번했다"면서 "조사를 거쳐 인권 침해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를 허용한 정부가 해외 입양인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보상, 회복을 위한 국가적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호소한 한국 해외 입양 문제는 유엔의 진상조사를 거쳐, 내년 9월 유엔 인권이사회에 보고될 것으로 보인다.
파비앙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9일부터 한국인권 관련 단체들을 차례로 만나고 있다. 해외 입양 관련 면담은 이용수 할머니와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만난 일정 바로 다음 순서로 진행됐다.
유엔 진실정의 특별보고관 방한 대응 인권시민사회모임은 "특별보고관의 이번 방한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고려한 것"이라면서 "미진한 한국 사회의 과거사 청산 현황이 공식적으로 확인되고, 진정한 과거사 청산을 위한 유의미한 권고가 내려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