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이 사무실을 처음 찾아오다 보니 내가 있다고 보고 범행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7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 법조빌딩 방화사건과 관련해 외부 출장으로 화를 면한 A 변호사는 10일 한국일보 통화에서 "정신이 없다"고 황망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나도 피해자지만 떠들 입장은 못 된다"며 말을 아꼈다.
A변호사는 "오래전부터 방화 용의자와 소송 건으로 법정에서 마주쳤지만 개인적으로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민사소송에서 투자금 반환 문제만 다뤘고, 용의자 천모씨가 여러 소송을 많이 하는 인물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A변호사는 법정에서 용의자 천씨로부터 과도한 비난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용의자가 법정에서 나를 많이 비난하다가 재판부로부터 제지를 많이 당했다"며 "법정 태도가 거슬렸지만 직접적으로는 그와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고 말했다.
A변호사는 "법정이나 법정 밖에서 상대방 의뢰인으로부터 봉변당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서로 응대하지 않는 게 묵시적 수칙"이라며 "재판정에서 용의자가 나를 비난할 때도 재판부를 향해 의견을 피력했을 뿐 그와 직접 말을 나눈 적은 없다"고 밝혔다.
A변호사는 이번 범행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하고, 이런 종류의 소송이 엄청 많기 때문에 범행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용의자 천씨는 대구 수성구 재개발사업에 투자했다가 분양이 저조해 금전적 손해가 생기자 시행사를 고소했다. 하지만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시행사 측을 대리한 A 변호사에게 앙심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A변호사는 용의자 천씨가 자신 대신에 같은 사무실을 쓰는 동료 변호사에게 범행한 것에 대해선 "용의자가 사무실에 처음 온 것 같다. 내가 있다고 간주하고 범행했을 수도 있고, 흥분을 참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A변호사는 숨진 변호사와는 지난해 초부터 운영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공동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용의자가 살해한 6명 중 5명이 숨진 변호사와 그 직원들"이라며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A변호사는 "장례를 잘 치를 수 있도록 뒤에서 도울 뿐, 내가 앞에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