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포 할아버지의 지혜

입력
2022.06.12 22:00
27면

둘째 아이가 매일 타고 다니는 자전거의 바퀴에 펑크가 났다. 혈기 넘치는 중학생이라 천방지축으로 몰고 다니더니 어디 보도블록에라도 부딪힌 모양이다. 좀 조심해서 타지 그랬냐고 타박을 했지만, 아침에 등교하면서 당분간 자전거를 못 타게 되었다고 축 처진 어깨를 보니 마음이 안쓰럽다. 마침 오전에 시간이 좀 있던 터라 학교 다녀오면 바로 탈 수 있도록 수리를 해놓아야겠다 마음먹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미리 사둔 자전거 펑크 수리 도구들도 있었고, 어렸을 때 동네 자전거포 할아버지가 수리하시는 모습을 여러 번 눈여겨봐 둔 터라 이 정도는 문제없이 해내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눕혀 놓고 타이어를 분리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낑낑거린 끝에 튜브를 빼낸 뒤 할아버지의 비법, 비눗물을 여기저기 묻혀가며 바람을 넣어보니, 과연 비눗방울이 만들어지며 바람이 새는 곳이 보였다. 그럼 그렇지, 득의양양해하며 준비해두었던 고무패치에 접착제를 발라 단단하게 붙였다. 그런데 어라, 이게 영 제대로 달라붙지 않고 바람만 넣으면 힘없이 떨어진다. 멀쩡한 패치를 몇 개나 버려가며 시도해도 안 돼서 일단 포기하고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봤다.

그 할아버지는 덧붙일 고무 조각에 접착제를 바른 후 곧바로 튜브에 붙이지 않고 그 상태로 놓아둔 채 늘 담배 한 대를 피워 무셨던 게 생각났다. 아하, 그게 단순히 담배를 피우고 싶으셨던 게 아니라 접착제가 고무를 녹일 시간을 천천히 기다리셨던 거로구나. 나도 이번엔 서두르지 않고 패치와 튜브에 접착제를 발라놓고 가만히 기다렸다. 아니, 좀더 생각해보니 할아버지는 한 손으로는 담배를 피우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는 느긋하게 자전거의 바퀴 안쪽을 훑고 계셨었다. 이왕 흉내내기로 했으니 철저히 따라해볼 요량으로 은근하게 바퀴를 훑어 나가다 보니 아, 펑크의 원인이 된 날카롭게 튀어나온 부분이 손가락 끝에 만져졌다. 아마 거친 노면에 바퀴 한쪽이 찍히면서 살짝 난 상처부위가 고무튜브를 찔러서 펑크가 난 모양이었다. 하긴 결과가 있다면 그 원인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나. 패치만 붙여서 다시 바퀴를 조립했더라면 얼마 못 가서 또 펑크가 날 뻔했다.

인터넷에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모든 일이 얼마나 빠르게 이루어지는지 심지어 국제전화 국가번호가 '82'일 정도라는 농담을 읽었다. 물론 사회가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리의 삶 역시 모든 일을 서둘러 한다고만 좋은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때로는 무의미해보이는 시간과 모색의 과정들도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기다림을 못견뎌하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제대로 된 변화 대신 붙여도 붙여도 다시 떨어지는 고무패치처럼 피곤한 변화의 수레바퀴에 갇혀 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6월 1일 지방선거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의 살림살이를 담당할 일꾼들이 새로 뽑혔다. 많은 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중요한 자리들인 만큼 당연히 열심히 직분에 임하시리라 믿는다. 하지만 4년이라는 시간 안에 의미있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바심에 쫓기기 전에,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차분히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지혜가 이분들에게 함께하길 기원한다.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