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지방선거 패배 책임론과 차기 당권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친(親)이재명계와 반이재명계로 갈라진 가운데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출신)이 활동을 재개하고 나섰다. 다만 이 역시 계파 움직임으로 비칠 경우 '86용퇴론'이 재점화할 수 있는 만큼 '당 쇄신 및 대안 제시'라는 역할에 보다 방점을 찍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86 정치인인 이인영(4선) 의원은 9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김영호 허영 김원이 최종윤 등 측근 의원들과 저녁 식사모임을 갖고 당내 상황을 공유하고 진로를 모색했다. 이 의원의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대한 대화도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모임에 참석한 한 의원은 "친이재명계와 친문재인계의 소모적인 계파 갈등을 극복하고 민주당과 진보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가 오갔다"고 전했다. 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 통일부 장관을 지냈지만 김근태(GT)계로 분류된다.
이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현안에 목소리를 내면서 '연재 정치'를 시작했다. '친명 대 반명' 갈등을 넘어 민주당 고유의 색깔을 되찾자는 내용이 많다. 8일에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명과 반명의 구도가 형성된다고 한다"며 "한마디로 완전히 망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9일에는 선거 패인으로 "민주당이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김민석(3선) 의원도 최근 당의 혁신 과제를 제시하는 '민주당 뉴딜 시리즈'와 윤석열 정부 견제 성격인 '협치일기'라는 페이스북 연재를 시작했다. 그는 "상대만 보지 말고 국민과 세계 미래를 봐야 한다. '명낙대전(이재명계와 이낙연계의 다툼)'은 허망하다"며 친명과 반명 간 계파 다툼을 비판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86그룹이 뭉쳐서 활동하면 '낡은 86세대는 물러나라'는 용퇴론이 다시 불거질 수 있는 만큼, 계파 정치 비판을 고리로 각자 새로운 활동 공간을 만들고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86용퇴론은 지난 대선 당시 송영길 대표가 공개 제안했다. 그러나 송 전 대표와 우상호 의원의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후속 움직임은 나오지 않았다. 대선 패배 직후 박지현 당시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86용퇴론을 다시 꺼내들었지만, 오히려 "특정 세대는 전부 물러나라는 요구는 지나치다"는 86세대 반발에 부딪혀 흐지부지됐다.
다만 혼란에 빠진 당을 수습할 구심점이 보이지 않으면서 86그룹의 역할이 재조명 받고 있다.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계파색이 옅은 우상호(4선) 의원이 7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된 것이 대표적이다. 우 의원은 앞으로 2개월 동안 당을 수습하고 전당대회를 무사히 치르는 역할을 수행한다.
6·1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송영길(5선) 전 대표도 이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 하의도를 방문한 사진을 공개하면서 조심스럽게 활동을 재개했다. 그와 가까운 한 의원은 "송 전 대표는 앞으로 활동 공간을 모색하며 서울시장에 재도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