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측정할 때만 혈압이 높다면…

입력
2022.06.09 00:09
백의·가면 고혈압이면 '24시간 활동 혈압' 측정해야

평소 혈압이 정상인데 병원에서 혈압을 측정하면 혈압이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 반면 평소엔 고혈압인데 병원에서 의사가 진료할 때는 정상 혈압인 사람도 있다.

진료실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를 만나면 긴장되면서 일시적으로 혈압이 높아지는 경우(140/90㎜Hg 이상)를 ‘백의 고혈압(White Coat Hypertension)’이라고 한다.

평소엔 혈압이 높은데 병원에서 재는 혈압만 정상(140/90㎜Hg 미만)으로 측정되는 것을 ‘가면 고혈압(Masked Hypertension)’이라고 한다.

실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활동 혈압 측정(Korean Ambulatory Blood Pressure) 연구 분석 결과, 가면 고혈압은 10%, 백의 고혈압은 20% 정도였다.

강기운 중앙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백의 고혈압이나 가면 고혈압처럼 24시간 중 혈압 변동성이 심할수록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높기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스페인 다기관 코호트 연구 분석에 따르면 고혈압 환자는 사망률이 1.8배 증가하는데, 이 중 백의 고혈압은 사망률이 1.02배로 지속성 고혈압보다 낮지만, 가면 고혈압은 사망률이 2.8배로 지속성 고혈압보다 높았다.

이 때문에 이를 근거로 혈압 변동성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특히 가면 고혈압에 더 주의해야 한다.

강기운 교수는 “고혈압 환자 가운데 일정한 시간에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평소 혈압이 높다가 병원을 찾는 시간대에는 정상 혈압으로 나타나는 가면 고혈압 환자도 더러 있다”고 했다.

강 교수는 따라서 “주로 남성이나 고령, 흡연자에게서 가면 고혈압이 잘 나타나며, 이들은 병원에 오는 시간대에만 혈압이 조절되고, 그 밖의 대부분 시간대에는 혈압이 조절되지 않아 응급 상황이 발생하거나 심ㆍ뇌혈관 합병증이 발생해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진료실에서만 혈압이 높게 측정되는 백의 고혈압 환자는 실제 고혈압으로 진단받은 환자 중 10~20%를 차지할 만큼 발생률이 높다. 주로 여성이나 마른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강기운 교수는 “백의 고혈압이나 가면 고혈압 모두 지속성 고혈압 환자보다 진단·치료 시기를 놓쳐 예후가 좋지 않고, 혈압 약을 먹어도 진료실에서는 지속적으로 혈압이 높을 때가 많아 약을 과량 복용해 저혈압이 생길 우려도 있고, 고혈압 합병증이나 사망 위험도 높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가면 고혈압이나 백의 고혈압이 있는 혈압 변동성이 심할수록 ‘24시간 활동 혈압 측정(ABPMㆍAmbulatory Blood Pressure Monitoring)’을 하거나 ‘가정 혈압 측정(HBPMㆍHome Blood Pressure Monitoring)’을 자주해야 혈압 변화를 수시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24시간 활동 혈압 측정(ABPM)은 병원에서 상담 후 필요에 따라 집에서도 입을 수 있는 얇은 옷 위에 ABPM 혈압측정기를 착용한 뒤, 30분마다 자동으로 혈압이 측정돼 24시간 혈압이 기록되고 잠을 잘 때도 측정된다.

24시간 활동 혈압 측정(ABPM) 당일에는 운동, 음주 및 과도한 카페인 복용을 삼가고 샤워를 할 수 없다. 24시간 후 병원을 다시 방문하면 ‘24시간 평균 혈압(125/80㎜Hg 이상)’ ‘주간 평균 혈압(135/85㎜Hg 이상)’ ‘야간 평균 혈압(120/75㎜Hg 이상)’ 등을 확인해 더 정확한 고혈압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과 고혈압 약물 치료 효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의 각종 연구에서 수축기(최고) 혈압이나 이완기(최저) 혈압 또는 24시간 혈압 변동성이 심하거나 밤에 혈압이 낮아지지 않으면 고혈압에 의한 장기 손상으로 협심증ㆍ심부전ㆍ뇌졸중ㆍ신부전 등 심ㆍ뇌혈관 질환 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빠르고 불규칙한 맥박을 보이는 심방세동(心房細動) 환자는 병원에서 혈압이 높아지는 백의 고혈압을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최근 이탈리아에서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발표한 자료를 보면 가면 고혈압은 지속형 고혈압 만큼 심방세동 발생이 1.8배로 높았다.

강기운 교수는 “고혈압이나 지속적인 혈압 상승이 관찰되는 환자는 되도록 하루 중 혈압 변동성 패턴을 확인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어떤 환자는 낮과 밤이 바뀌어서 생활하거나 혹은 어떤 특정 시간대에 혈압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며 “만일 혈압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생활 교정이 안 된다면 약물의 용량 조절이나 약제 조절로 혈압 변동성을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

추가로 정확한 혈압 변동성 측정하려면 ‘가정 혈압 측정(HBPM)’이 필요하며, 아침의 급격한 혈압 상승(surge)을 확인하기 위해 되도록 아침 식사하기 전에 자가 혈압을 측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령의 환자들은 새벽 6~7시에 깨는 경우가 많아 그 시간에 혈압을 측정하고, 아침에 평소보다 혈압이 상승되는 것을 확인하면 약물 치료 및 약물 조절이 필요하다.

강기운 교수는 “기존 연구에 따르면 아침에 측정한 혈압이 높을수록 뇌졸중 발생 위험이 높으며, 밤에 측정한 혈압 상승도 적은 폭이지만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며 “고혈압 환자나 고혈압 환자가 아니더라도 가정에서 아침 혈압 측정이 필요하며, 혈압 변동성 및 고혈압 진단ㆍ치료에 있어 먼저 자기 혈압의 하루 중 변화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