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 삶 살려 했는데… 여성의 삶은 쉬 변치 않는다 [몰아보기 연구소]

입력
2022.06.10 10:30
12면
웨이브 드라마 '밀드레드 피어스'

편집자주

※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2편씩 매주 금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웨이브 바로 보기 | 5부작 | 15세 이상

밀드레드 피어스(케이트 윈즐릿)는 위기의 중년여성이다. 남편 버트(브라이언 오번)의 집안사업은 파산 수준이다. 버트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준다. 주체성 강한 밀드레드는 참을 수 없다. 버트와 별거에 들어가고 홀로 생계를 책임지게 된다. 과연 밀드레드는 남편의 콧대를 누를 만한 독립을 이뤄낼까.

①험난함 뚫고 자수성가한 그녀

때는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0년대 초입. 마땅한 직장 이력이 없는 여성에게 취업은 별 따기다. 중산층의 자존심으로 허드렛일을 하고 싶지 않았던 밀드레드는 결국 식당 여급으로 일하게 된다. 아이들 부양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요식업을 경험한 밀드레드는 빼어난 요리솜씨를 사업으로 발현하게 된다. 돈이 쌓이는 와중에 여성들이 선망하는 남자 몬티(가이 피어스)와 사랑을 나눈다.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새 출발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당연히 따르는 걸까. 밀드레드는 온 힘을 다해 가정을 건사하나 시련은 그를 가만 두지 않는다. 막내딸은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맏딸 베다(에번 레이철 우드)는 그릇된 가치관으로 밀드레드를 괴롭힌다.

②일도 육아도 사랑도 포기 못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밀드레드는 굽히지 않는다. 그는 요식 사업가로 성공한다. 재력으로 베다의 피아노 레슨을 굳건히 지원한다. 가업이 파산했으나 상류층 삶을 포기 못하는 남자친구 몬티의 용돈을 대주기까지 한다. 밀드레드는 억척스레 하루하루를 살며 일도 육아도 사랑도 포기하지 않는다. 모든 면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그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밀드레드의 삶은 외형만 화려하다. 베다는 비뚤어진 삶을 살아간다. 엄마의 희생과 사랑을 곡해해 받아들인다. 하층민 출신으로 재력가 집안 남자와 어린 시절 결혼했다가 뒤늦게 자기 삶을 찾은 엄마를 경멸한다. 자신이 상류층으로 태어나지 못한, 태생적인 신분의 한계를 엄마 탓으로 돌린다. 오랜 시절 불화한 엄마와 딸의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향한다.

③사회는 그녀의 행복을 원치 않은 걸까

밀드레드는 비극으로 삶을 마감할 위기에 처한다. 그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다만 가족과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세상은 그런 그를 돕기보다 이용하려고 만 한다. 딸 베다는 금전만능주의에 빠져 엄마의 재력만 탐낸다. 겉모습만 그럴 듯한 남자친구 몬티는 밀드레드를 사랑보다는 육욕을 위한 대상으로, 때로는 자신의 지갑을 채워줄 자선가로 취급한다.

드라마는 1930년대 주체적인 한 여성의 남다른 삶을 통해 현재를 돌아본다. ‘알파 걸’로 살아가는 여성이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무릎이 꺾이는 모습은 20세기 초반이나 21세기나 크게 다르지 않다. 밀드레드의 악전고투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동시에 좌절을 안긴다.

※몰아보기 지수: ★★★★(★5개 만점, ☆ 반개)
미국 작가 제임스 케인의 동명 소설(1941)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945년 개봉한 동명 영화는 필름 누아르의 고전으로 꼽힌다. 영화가 잔인한 운명에 눈물 짓는 여성 밀드레드 피어스의 고난에 포커스를 맞추는 반면 드라마는 시대에 맞선 밀드레드의 분투에 집중한다.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 우아한 음악, 수려한 편집, 인상적인 연기 앙상블이 어우러지며 고풍스러운 장면들을 빚어낸다. ‘벨벳 골드 마인’(1998)과 ‘파 프롬 헤븐’(2002), ‘캐롤’(2015) 등을 연출한 미국 독립영화 거장 토드 헤인즈가 메가폰을 잡았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