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들어 첫 대규모 파업이 이틀째 이어지고 있지만 타협을 주도할 정부의 '노정 컨트롤타워'는 보이지 않는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국회 뒤에 숨었고, 노사 관계 중재 책임이 있는 고용노동부는 장관이 해외에 나가 있다. 전국 곳곳은 크고 작은 충돌과 물류 운송 차질로 아우성이다.
8일 시멘트와 철강 업계 등에 따르면,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총파업에 따른 물류난이 현실화하고 있다. 한찬수 한국시멘트협회 부장은 "전날 시멘트 출하량은 1만5,500톤으로 평소(18만 톤)의 10%도 안 되는 수준이고, 오늘은 거의 출하가 안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포항과 광양제철소 물동량 10만 톤 중 3만5,000톤의 출하가 지연됐다"고 말했다.
조합원과 경찰 간 충돌도 잇따랐다. 이날 오전 8시 20분쯤 경기 하이트진로 이천공장 출입구 앞에서 물류 배송 차량을 막아선 조합원 15명이 운송 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비슷한 시각 부산에서는 집회 현장을 지나가던 트레일러 2대에 물병과 계란을 던진 조합원 두 명이 붙잡혔다. 광주와 경남 거제시에서도 조합원들이 경찰에 연행됐다.
국토부는 명확한 봉합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명소 2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화물연대의 파업 명분인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는)궁극적으로 법률 개정 사안"이라면서 "국회에서 논의돼 결정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18년 국회의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으로 도입된 안전운임제는 정부가 아닌 국회가 해결 주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어 차관은 '일몰제에 대한 국토부 입장'을 묻자 "정부도 화주나 운송사와 더불어 하나의 (협상) 주체인 입장에서 의견을 내는 게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파업이 한 달 전에 예고됐음에도 국토부는 아직 안전운임 태스크포스(TF)도 꾸리지 못했다.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 의식한 듯 어 차관은 "이미 화물안전운행위원회 정례협의 등을 통해 화물연대와 매주 혹은 2주에 한 번꼴로 만나 논의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화물연대는 실체 없는 TF나 유명무실한 정례협의 대신 정부의 명확한 입장 표명이 우선이라고 반박했다. 박연수 화물연대 정책기획실장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국토부가 말하는 기존 협의체라는 것들은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일상 현안을 논의한 것에 불과하고, 일몰제 폐지는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대응해 왔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 역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화물연대 소속 기사들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아 고용부가 조정에 나설 권한은 없다. 하지만 고용부는 노사 관계를 담당하고 노동계 동향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만큼 노동 현장의 분쟁에 대해 비공식적인 조정 역할을 해왔다. 택배노조 등 다른 특고직의 파업을 중재한 전례도 있다. 직접적인 개입이 여의치 않으면 제3의 연구기관이나 국회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선 "주무 부처는 국토부"라며 방관자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예고된 파업인 데다 윤 정부 들어 첫 대규모 쟁의가 발생했음에도 노동 정책을 총괄하는 고용부의 역할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화물연대 파업 직전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참석차 스위스 제네바로 출국해 빈축을 샀다. 원래 화상으로 연설을 할 계획이었는데, 막판에 항공권 구매에 성공해 급히 출국하게 됐다는 게 고용부 설명이다.
민주노총은 별도 논평을 통해 "결과적으로 화물연대의 총파업으로 새 정부의 노사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중대한 시점에 노동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의 장관이 자리를 비우게 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박연수 실장도 "정작 ILO는 화물 노동자들의 노동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정부 기조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국가 대표로 ILO에 참석하는 게 유감"이라고 꼬집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새 정부의 국정 과제에 노사 관계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는 게 명시돼 있는데, 고용부가 대통령의 의지를 거스르며 대화를 중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번 사태 대응 방안을 국토부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며 "이 장관 역시 출국 직전까지 관계 부처 회의에 참석해 화물연대 파업 현안을 점검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