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선택은 이번에도 검찰 시절 '내 사람'이었다. 윤 대통령은 7일 금융감독원장에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통하는 이복현 전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를 임명했다. 검찰 출신 금감원장은 금감원 설립 이래 처음이다.
대통령실과 정부 주요 인선의 무게추는 점점 검찰에 쏠리고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인사 원칙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통합·균형·다양성보다 능력주의를 내세운 '윤석열식 인사'가 '검찰 만능 인사'로 굳어졌다는 비판이 거세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이날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정은보 전 금감원장 후임으로 이 전 부장검사를 임명 제청했다. 금감원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신임 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공인회계사 시험과 사법시험에 동시 합격한 검찰 내 대표적인 경제·금융 수사 전문가다. 윤 대통령이 대검 연구관을 맡았던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외환은행 론스타 헐값 매각 사건 수사를 함께했다. 이어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2016~2017년 국정농단 특검 수사를 함께한 대표적인 '윤석열 라인'이다. 그는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반대하며 검사직을 던졌다.
검찰 출신을 중용한 건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 등 증권‧금융범죄의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하지만 역대 금감원장의 면면을 보면 금융계 인사나 학자 출신이 많았던 만큼 이번 인선은 파격이다. 이 원장은 올해 50세로 '최연소 금감원장' 타이틀도 가져가게 됐다.
이로써 윤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 출신 인사는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6명, 정부 부처 장·차관급에 7명 등 총 13명으로 늘어났다. '출신을 가리지 않고 능력을 지닌 인재를 널리 발탁해 중용하겠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인사정책 기조라지만, 인재가 유독 검찰에 몰려있느냐는 의문이 여권 내부에서도 제기된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검사 출신이 숫자 자체가 너무 많다"며 "인사가 만사인데, 균형감을 잃어선 안 된다"고 우려했다.
이번 인사로 '검찰공화국'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은 더 불붙을 전망이다. 법무와 수사, 인사, 검증에 더해 국가정보원과 금감원 등 주요 권력기관을 검찰 출신이 장악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3일엔 윤 대통령의 최측근인 조상준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국가정보원의 예산·인사를 총괄하는 '2인자'인 기획조정실장에 임명됐다. 공정거래위원장에도 검사 출신인 강수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거론되지만 비판 여론을 의식해 일단 인선이 멈춰있는 상태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사정, 공직 인사의 정부 독점을 넘어 민생현장까지도 검찰이 장악해 검찰공화국을 만들겠다는 선전포고"라고 비판했다. 검찰 출신이 주요 권력 포스트에 포진함에 따라 내부에서 견제와 균형 기능이 무너지고 정권 이너서클이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직진' 중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에 '정부 요직을 검찰 출신이 독식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우리 인사 원칙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게) 원칙"이라고 답했다. 이후 5시간 30여분 만에 이 원장에 대한 인사를 강행한 것은 당분간 '검찰 우선 발탁 기조'를 굽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통화에서 "윤 대통령도 검찰 쏠림 인사에 대한 우려를 알고 있지만 내부 개혁과 혁신을 위해 최고로 적합한 인물들을 인선하는 것"이라며 "정권 초기엔 대통령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권 초기 국정 운영 동력 확보를 위한 자연스러운 인사라는 반론이다.
다만 여당과 대통령실 일각에서 부정적 여론과 우려를 최근 윤 대통령에게 잇따라 전달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남성 편중 인사에 대한 지적이 많았을 때도 대통령이 여러 의견을 살핀 이후 방향을 바꾸지 않았느냐"며 "비판 여론을 경청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