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과 1000만 영화

입력
2022.06.07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침체됐던 극장가에 모처럼 활기가 돌고 있다. 범죄오락영화 ‘범죄도시2’가 지난 6일 개봉 20일 만에 누적 관객 9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1,000만 관객 동원이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1,000만 명 동원작은 2019년 5월 개봉한 ‘기생충’(1,031만3,201명)이 마지막이다.

□ ‘범죄도시2’는 10여 년 전 발생했던 동남아 한국인 관광객 납치 살인사건이 모티브다. 형사역의 주연 마동석의 근육질 연기는 식상할 만도 하지만 일당백의 기세로, 흉기를 휘두르는 폭력배를 맨손으로 제압하는 그의 연기는 제대로 물이 올랐다. 복잡한 서사도 미묘한 디테일도 없지만 코로나 사태로 스트레스가 쌓인 관객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셈이다. “이유가 어딨어? 나쁜 놈은 그냥 잡는 거야”라며 외국 사법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 범죄자 체포에 나서는 마동석의 직진은 공권력 강화와 법 질서 유지를 강조하는 보수 정권의 등장이라는 시대적 분위기와도 묘하게 어울린다. 껑충 뛴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좌석 띄어앉기 해제와 취식 허용(4월 25일) 등 규제 완화도 흥행에 한몫했다.

□ ‘기생충’을 비롯해 2019년에만 5편이 넘는 1,000만 대작을 쏟아내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극장가는 느닷없이 닥친 코로나 사태로 빈사 상태에 빠졌다. 2019년 1억6,000만 명이었던 총 관객은 지난해 1,800만 명으로 80% 이상 급감했을 정도다. ‘방구석 1열’로 상징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보편화와 거리 두기 장기화로 ‘1,000만 영화’는 전설로 남는 것 같았으나 ‘범죄도시2’의 매진 사례로 영화인들의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엔데믹 시기에도 대중오락의 장으로서 극장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 지난달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으로 한국영화의 진가를 재확인시켜준 박찬욱 감독은 수상 이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이 이런 거였는지 잊고 있는 감각을 되살려보기”를 권했다. 코로나 변이의 재유행 가능성 등 변수 때문에 ‘범죄도시2’의 성공이 반등의 계기가 될지 반짝 흥행으로 그칠지는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코로나 불황의 터널을 통과해 온 한국 영화계에 터널 끝 한 줄기 빛으로 비춰지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왕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