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이달 10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지난달 가맹점주들의 반발 때문에 12월로 유예됐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음료를 일회용컵에 주문할 경우 보증금 300원을 낸 뒤 컵을 반환할 때 돌려받는 제도입니다. 스타벅스·던킨 등 전국 가맹점 수가 100개 이상인 105개 브랜드 매장 3만8,000여 곳이 우선 시행 대상이었죠.
가맹점주들의 불만은 제도 시행으로 인한 비용 부담과 반환컵 보관 등에 따른 업무 과중에 집중됐습니다. 정부는 향후 6개월간 가맹점주들과의 논의를 통해 이 부분을 빠르게 보완해야 하는데요. 앞서 시행되고 있는 빈병 보증금제가 좋은 참고사항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빈병 보증금제는 무엇이고, 업계와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빈병 보증금제는 빈병 회수와 재사용을 늘리기 위해 1985년 도입됐습니다. 첫 시행 때만 해도 10원, 20원짜리 병을 모아 고물상에 갖다 주면 어린아이들 용돈으로 제법 쏠쏠했기에 인기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1994년부터 약 20년간 보증금이 소주병 40원, 맥주병 50원에 머물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소주 판매 가격은 갈수록 올라 1994년 556원에서 2015년 1,069원으로 2배가량 뛰었는데, 보증금은 그대로다 보니 빈병을 반환할 경제적 유인이 사라진 겁니다. 사람들은 빈병을 반환하는 대신 쓰레기통에 버렸죠. 실제 2014년 한 해 동안 소비자가 직접 반환한 병은 고작 24.2%에 그쳤습니다. 이로 인해 소비자가 포기한 보증금은 570억 원에 달합니다.
정부는 병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2017년 소주병과 맥주병 보증금을 각각 100원, 130원으로 인상했습니다. 보증금 액수가 커지자 소비자 직접 반환율은 2016년 30.2%에서 지난해 63.5%로 2배 이상 높아졌고, 전체 회수율도 같은 기간 94.9%에서 97.6%로 증가했습니다.
언뜻 술술 풀린 것처럼 보이지만, 빈병 보증금제라고 업계 반발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보증금을 인상한 2017년에는 일부 편의점들이 소주 가격을 100원 더 높게 책정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빈병 보증금 인상을 핑계로 마진을 더 올린 셈이죠. 곧장 비난 여론이 쇄도했고, 결국 편의점들이 한 달여 만에 백기를 들고 가격을 내리면서 사태가 마무리됐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처럼 반환된 병을 보관하기 어렵다는 불만도 폭주했습니다. 동네 작은 편의점이 술병을 수십 병씩 어떻게 쌓아 두느냐는 겁니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인반환기 설치를 빠르게 늘렸습니다. 그 결과 현재 무인반환기는 전국에 111대 설치됐고, 올해도 연말까지 94대를 추가 설치할 예정입니다. 1인당 반환 병수도 30병 이하로 제한해 매장 부담을 덜어줬습니다. 다만 해당 매장에서 산 병은 반환 시 개수 제한이 없습니다.
제조사가 도소매상에게 지불하는 취급수수료도 2017년부터 소주 16원, 맥주 19원에서 종류에 관계없이 병당 33원으로 현실화했습니다. 취급수수료는 병 재사용으로 제조사가 병당 약 80원의 원가를 절감하게 됐으니 이 중 일부를 도소매상과 나누도록 한 겁니다.
이와 더불어 빈병 보증금제에서는 일회용컵 보증금제와 달리 보증금에 세금을 물리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마트나 편의점에서 소주를 구입하면 영수증에 보증금이 따로 표시되죠.
정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에서도 빈병 보증금제와 비슷한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1인당 반환할 수 있는 일회용컵의 수를 제한하고, 무인기를 대폭 늘려 매장의 보관 부담을 덜어주는 식이죠. 보증금 비과세 방안도 준비 중입니다.
또 일회용컵 보증제에서는 매장들이 제각기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에서 보증금 반환을 위한 라벨지와 표준용기를 한 번에 대량으로 구매해야 하는데요. 이로 인해 목돈이 들어가는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본사가 이를 대신 주문하게 할 방침입니다. 이 경우 가맹점들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본사를 통해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래도 부담은 여전하다고요? 정부는 제도 시행으로 비용이 절감되는 부분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실제 표준용기를 사용할 경우 브랜드 로고 인쇄 비용이 사라져 개당 6원 내외를 절감할 수 있고, 컵을 재활용하기 때문에 폐기물 부담금도 개당 1.8원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빈병 보증금제와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병은 제조사가 만든 걸 도소매상이 대신 거두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제조사에서 도소매상에 취급수수료를 주지만, 프랜차이즈의 경우 본사와 가맹점이 계약관계로 맺어진 사실상 한 덩어리라 정부가 나서서 본사에다 가맹점에 취급수수료를 주라 마라 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매장 내 회수된 일회용 컵의 운반·처리 비용은 매장이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합니다. 대신 그밖에 일회용컵 수집·운반업자에게는 보증금대상사업자, 즉 프랜차이즈 본사가 4~10원의 처리지원금을 지원합니다.
일각에서는 소비자에게도 환경오염의 책임을 물어 보증금을 300원 내되 반환 시 100원이나 200원만 받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정부 측 설명입니다. 곧장 물가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데다 이 제도의 기본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겁니다. 환경비용은 기본적으로 수익자가 부담해야지 이를 소비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