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군 창설일은 헌법과 정부조직법이 공포된 직후인 1948년 8월 15일이다. 하지만 해군 공식 창설일은 1945년 11월 11일. 그날 해군의 모태인 ‘해방병단’이 출범했다. 당연히 공군(49년 10월 창설)보다 먼저고, 미 군정청이 국방경비대를 꾸린 육군 창립일(46년 1월 15일)보다도 빨랐다.
해방병단 탄생 주역 겸 초대 단장은 항해사 출신 사업가 손원일 (1909.6.22~1980.2.15)이다. 그는 해방 직후 ‘해사협회’를 조직, 미 군정청에 해군 창설 의지를 전했고, 군정청은 연안 경비와 조난선 구조 등을 맡을 해안경비대 설립을 제안했다. 해방병단은 12월 200명 단원과 사관후보생을 모집했다. 미군정은 이듬해 1월 군정법령 제42호로 경비대를 국방사령부에 편입했다.
손원일은 상해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국회의장격)을 지낸 평안도 출신 감리회 목사 손정도의 장남이다. 상해에서 성장해 난징 중앙대학 항해과를 졸업한 그는 중국 해군 국비유학생으로 3년간 독일서 유학한 뒤 독일 상선 항해사로 경력을 쌓았고, 30년대 해운업을 시작해 크게 성공했다. 그렇게 번 돈은 독립자금으로, 해방 후에는 해방병단 자금으로 쓰였다.
군정청 소속 조선해안경비대 총사령관에 이어 초대 해군참모총장이 된 그가 부릴 수 있는 배는 일제가 버리고 간 낡은 목선과 미 해군이 지원한 비전투함 37척이 전부였다. 그는 ‘함정건조기금갹출위원회’를 설립, 해군장병과 해군부인회를 주축으로 국민 성금 모금운동을 벌였고, 자기 돈과 정부 지원금을 합쳐 총 12만 달러로 미국서 ‘백두산함’ 등 전투함 4척을 구입했다. 그 덕에 대한민국 해군은 한국전쟁에서 연합군의 일원으로 인천상륙작전 등에 실질적으로 참전했다. 국군최고지휘관으로서 서울수복작전에도 가담했던 손원일은 이후 국방장관과 서독대사 등을 역임했다.
2006년 6월 9일 배수량 1,800톤급 잠수함 ‘손원일급 잠수(SS-II)함’ 1번함 ‘손원일 함’이 한국 영해에 진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