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을 한 유족들은 마음 깊은 곳에 불덩어리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유족들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동료들의 따뜻한 목소리입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자살유족 동료지원활동가 장준하(45)씨는 자신이 유족들을 돕는 활동가로 나서게 된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장씨가 리더인 유족 자조모임은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유족들이 외부에 털어놓기 힘든 아픔과 사연을 공유하고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공동체다.
장씨는 4년 전 동생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유가족이다. 평범한 영업사원이던 장씨는 동생의 죽음 이후 자살유족 동료지원활동가이자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임상심리사로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싸늘하게 식은 동생 시신을 처음 발견한 2018년 5월 장씨는 자살유가족이 됐다. 직장을 옮기려고 기독교재단 자살예방센터에서 강사 양성교육을 이수하던 시기였다. 그는 "강사가 되려던 내가 유족이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다른 사람 살리려다가 정작 동생 죽음은 막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이 컸다"고 말했다.
장씨는 동생을 보낸 뒤 두 달간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유족은 자신의 고통을 주변에 공유하기 어렵기 때문에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다. 장씨는 "개인적 아픔을 털어놓자 돌아오는 것은 침묵 아니면 시선 회피였다"며 "내 이야기가 타인에게 폐만 끼친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에게 처음 위로의 손길을 건넨 곳은 자살유족 자조모임이었다. 지역 상담사의 권유로 참여한 모임에서 "힘들었겠네요"라는 다른 유족의 위로는 큰 힘이 됐다. 장씨는 "그날 모임을 마치고 어머니께 전화드렸다"며 "부모님의 고통을 어루만져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여력이 없었는데, 모임 이후 타인의 상처에도 시야를 넓힐 힘이 생겼다"고 밝혔다. 그가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른 유족을 위한 동료지원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장씨는 47시간 전문 훈련을 받았지만 자조모임을 이끄는 일이 녹록지 않을 때도 있다. 유가족 이야기를 경청하는 과정에서 회복됐던 상처가 또다시 들춰지기 때문이다. 장씨는 "자살한 가족을 발견한 첫 장면은 유가족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주기 때문에 당시 얘기를 듣는 것 자체가 고통이지만, 동료지원활동가는 그런 부분까지 안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총 1만2,975명이다. 자살 1건 발생 시 심적 고통을 받는 유족이 5~10명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에만 최대 12만9,750명의 유가족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유가족의 치료와 심리지원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사별한 지 1년 이내에 배우자 및 2촌 이내 직계 혈족은 1인당 100만 원의 외래 및 약제비, 입원치료비, 심리검사비, 상담 및 치료프로그램을 지원받는다.
장씨는 더 많은 유가족이 자조모임을 통해 치유돼 같은 아픔을 지닌 이들을 돕는 '선순환 네트워크'가 형성되길 소망한다. 그는 "주변에 유족이 있다면 '많이 힘들었겠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 달라"며 "가족의 아픔을 감추기보다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아 회복의 실마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