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승승장구할 것만 같은 대만의 대표 반도체 기업 TSMC에도 고민은 있다. ①첨예한 경제·군사적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미·중 갈등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②고질적으로 부족한 반도체 산업 인재 확보 문제 등이 파운드리 업계 부동의 1위를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는 것.
8일 정보기술(IT) 업계 등에 따르면, TSMC가 마주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만이 경제·군사적 갈등이 커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리적 요충지인 남중국해의 패권뿐 아니라 미래 첨단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고, TSMC를 가진 반도체 최강국 대만의 전략적 가치가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줄타기가 TSMC의 수익성 측면에서 볼 때 플러스보다는 마이너스로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TSMC도 이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미국이 추진 중인 한국·일본·대만의 '칩4' 반도체 동맹에 참여하면서 미국 현지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 달러(약 15조 원)를 들여 공장을 짓는 것을 비롯해, 일본과 싱가포르, 유럽 등을 대상으로 현지 설비 투자를 늘려 나가고 있다.
하지만 대만에 비해 인건비 부담이 큰 선진국에 대한 투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TSMC의 창업주 모리스 창도 미국 등 해외 공장이 늘어나는 것을 두고 ①비용 증가 ②개인주의적 기업 문화 ③공장 분산에 따른 경영 비효율 등을 꺼내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TSMC도 반도체가 국가 전략 자산으로 자리매김한 상황에서 효율이 떨어지고 수익이 줄더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배영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TSMC의 미국 투자는 시장보다는 안보나 동맹의 논리를 앞세워 진행되고 있다"며 "파운드리를 미국에서 운영할 경우 필요한 인력을 얼마나 적절하게 공급하고, 대만과 비교해 약 30%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생산성을 어떻게 유지하느냐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중국은 중국대로 TSMC를 괴롭히고 있다. 장기 집권을 앞두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연일 '대만 통일'을 강조하는 등 경고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게다가 대만의 중국 수출액은 2020년 기준 1,500억 달러(약 170조 원)로, 전체 수출액의 절반에 가깝다. 대만으로서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인 셈이다. TSMC가 그동안 미국의 대중국 압박 기조에 발맞추기 위해 중국 통신회사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중단하면서도, 지난해 중국 난징에 생산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중국과의 관계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TSMC는 올해 초 국제관계 전문가 영입에 나서는 등 대안 마련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대만 중앙통신에 따르면, TSMC는 2월 미중 정치경제학에 익숙한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분석가를 뽑겠다는 채용 공고를 구인구직 플랫폼에 올렸는데, 기술 인력만 채용하는 반도체 회사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라 대만 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과 중국 중 대만과 가까운 자리를 누가 확보하느냐 문제는 서태평양의 패권을 누가 차지하는가와 직결된다"며 "대만의 반도체 파운드리에 비상한 관심을 가진 중국 입장에선 반도체 굴기가 안 된다고 판단할 경우 극단적으로 대만을 침공해 기술 확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대만 내 반도체 전문 인력이 모자라다는 점 또한 TSMC가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TSMC는 설비 확대와 함께 올해 8,000명 가까운 인재 채용에 나서는 등 2025년까지 임직원 수를 20%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고질적인 인력난에 TSMC도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TSMC의 업무 강도가 높기로 유명해지면서,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TSMC는 뒤늦게서야 기본급을 올리는 등 젊은 인재 붙잡기에 나섰다. TSMC는 ①2020년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기본급의 20%를 파격적으로 인상했고, 최근에는 ②1987년 TSMC 창립 이래 처음으로 전 사원 대상 자사주 매입 보조금 제도를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이 구매하는 자사주 금액의 약 15% 이하 수준에서 보조금을 지급, 핵심 인재 이탈을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으로의 반도체 기술 및 인재가 빠져나가는 상황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대만 기술 인재 '빼가기'가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대만 정부가 강경 대응에 나섰지만 점점 나빠지고 있다. 지난달 대만 입법원(의회)에서 통과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인민관계 조례' 개정안에 따르면, 대만 정부의 보조금이나 투자를 받은 첨단 기술 분야 근무자가 중국에 취업할 경우 반드시 정부 심사를 받아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최대 1,000만 대만달러(약 4억3,000만 원)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