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회복을 노리는 블리자드의 야심작 '디아블로 이모탈'이 마침내 전 세계 팬들을 만났다. 롤플레잉(RPG) 게임의 전설 디아블로의 모바일 버전답게 출시 직후부터 상당한 인기몰이를 하면서 게임 시장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블리자드는 3일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 등에서 디아블로 이모탈을 글로벌 정식 출시했다고 밝혔다. 블리자드의 첫 모바일 플랫폼 기반 게임이자, 2012년 출시된 디아블로3 이후 10년 만에 나온 디아블로 시리즈의 후속작이다.
실제로 디아블로 이모탈은 재기를 노리는 블리자드가 내놓은 회심의 작품이다. 현재 블리자드의 사정은 좋지 않다. 기존 작품들의 인기는 시들해져 가는데, 신작들은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나온 오버워치2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블리자드의 추락세는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블리자드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3% 감소한 2억7,000만 달러(약 3,400억 원)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이용자 수에 있다. 1분기 월간활성화이용자(MAU)는 2,200만 명으로, 지난해 동기(2,700만 명) 대비 19% 줄었다. 4년 전(3,800만 명)과 비교하면 1,600만 명의 이용자가 블리자드를 떠난 것이다.
궁지에 몰린 블리자드가 찾은 출구 전략이 바로 '모바일'이다. 그동안 컴퓨터(PC) 게임 시장에만 공을 들인 블리자드로선 점점 덩치가 커지는 모바일 게임 시장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블리자드가 자사의 첫 모바일 게임으로 실패할 수 없는 디아블로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디아블로는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와 함께 블리자드를 세계적 게임사로 끌어올린 입지전적 게임이다. 2000년 출시된 디아블로2는 1,500만 장, 2012년 나온 디아블로3는 3,000만 장의 누적 판매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디아블로 이모탈이 시장에 선을 뵈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디아블로 이모탈은 2018년 개발이 알려졌을 당시 모바일 게임에 부정적 시선을 가졌던 컴퓨터(PC) 게이머들로부터 조롱을 받았다. 대다수 게이머는 디아블로 시리즈의 신작으로 '디이블로4'를 기대했지만, 블리자드가 디아블로를 모바일 버전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실망한 일부 팬들은 블리자드가 게임 제작의 장인정신은 내팽개치고 과거의 명성에 기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됐다고 분노했다.
당시 디아블로의 개발자 와이엇 쳉이 가라앉은 행사장 분위기를 되살리기 위해 "당신은 폰 없나요?(Do you guys not have phones?)"라고 농담을 했다가 이후 '님폰없'이라는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문구)이 확산하기도 했다.
이렇듯 디아블로 이모탈은 기대감과 부정적 전망이 공존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양산형 RPG 게임과는 다르다" "예상한 것보다 할 만하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이는 각종 지표에서도 잘 드러난다. ①사전 예약자만 3,500만 명을 돌파했고, ②출시 하루 만에 40개 이상의 국가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출시 하루 만에 다운로드 100만 회를 돌파했다. 빅데이터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디아블로 이모탈은 출시 이후 양대 마켓 다운로드 순위 1위에 오른 뒤 이날까지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디아블로 이모탈은 디아블로2와 디아블로3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시리즈 전통대로 야만용사와 성전사, 악마사냥꾼, 수도사, 강령술사, 마법사까지 6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우선 원작의 세계관을 토대로 기존에 다루지 않았던 이야기를 풀어놓아 기존 팬들의 향수도 자극했다. 시리즈의 인기 캐릭터인 데커드 케인과 레오릭 왕이 다시 등장하고, 디아블로2의 최종 보스였던 바알과 탈 라샤, 졸툰 쿨레의 과거 일화도 엿볼 수 있다.
기자가 연휴 기간을 이용해 디아블로 이모탈을 10시간 이상 이용해보니, 겉모습은 전작인 디아블로3를 모바일에 이식한 느낌이 강했다. 탈 라샤 서버에서 악마사냥꾼으로 레벨 50까지 플레이해 봤는데 원작과 동일한 3차원(3D) 그래픽과 쿼터 뷰, 캐릭터와 몬스터 디자인 등은 그대로였다. 여기에 온라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의 요소가 더해졌다. 8인 파티 플레이, 최대 150명 규모의 클랜 시스템을 지원한다. 불멸단과 그림자단 등 진영 기반의 플레이어간전투(PvP) 시스템도 추가됐다.
우선 기존에 디아블로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나 모바일 RPG 게임에 익숙한 이용자라면 디아블로 이모탈에 적응하기 어렵지 않다. 디아블로 시리즈답게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빠른 레벨업을 통해 엔딩을 볼 수 있다. 보스전과 던전 등 콘텐츠를 이용해보니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기 어려울 정도로 몰입감이 상당했다.
게임 시스템의 경우 모바일 버전답게 상당 부분이 간단해졌다. 스킬은 총 5개까지 사용이 가능했고, 물약도 매번 구매할 필요 없이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충전되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길을 헤맬 필요도 없었다. 퀘스트도 지도의 '발자국' 표시만 따라가면 됐다.
레벨업을 위한 의미 없는 퀘스트 반복도 다른 RPG 게임에 비해 적었다. 보통 RPG 게임의 경우 일정 구간에서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사냥을 하도록 강요하는데, 디아블로는 이를 아이템을 파밍할 수 있는 던전으로 대체했다. 더 좋은 아이템을 구해 캐릭터를 강화시켜가는 디아블로 특유의 재미가 여전했다.
조작감도 뛰어났다. 보통 모바일 게임의 경우 최적화와 조작감에 신경을 쓰더라도 작은 스마트폰 탓에 오랜 시간 컨트롤을 하면 손가락에 피로감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모바일 게임 대다수가 '자동 사냥' 기능을 지원하기 마련인데, 디아블로 이모탈은 자동 사냥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 게임의 재미는 수동 조작의 '손맛'에서 나온다는 신념 때문이다.
실제로 플레이해보니 블리자드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악마사냥꾼의 경우 무빙샷(이동 중 공격)이나 스킬 사용 시 실수가 발생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세세한 컨트롤이 가능했다. 타격감과 사운드도 디아블로의 명성을 잇기에 충분했다. 맵 이동 시 로딩 시간도 준수한 수준이었다.
국내 RPG 게임보다 돈을 내야 하는 경우가 적은 것도 장점이었다. 블리자드는 출시 전부터 "돈을 써야 이기는 페이투윈(Pay to win) 과금 모델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왔는데, 실제로 장비는 게임 내 던전 파밍 등을 통해서만 획득이 가능했다. 상점에서는 판매하는 상품도 겉모습을 변경할 수 있는 '꾸미기'나 레벨에 따라 제작 재료를 주는 '배틀패스'가 대부분이었다. 과금이 없더라도 게임의 마지막 콘텐츠까지 즐기는 데 지장이 전혀 없다.
물론 단점도 있다. 추가 다운로드 파일까지 10기가바이트(GB)가 넘는 용량 등 그래픽에 상대적으로 고사양을 요구한다. 일부 스마트폰 모델에서는 화면이 깨지는 등 게임 플레이가 불가능할 정도로 오류가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베타 버전인 PC버전의 완성도 또한 개선해야 할 과제다. PC버전은 입력 딜레이 등 조작감이 좋지 않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용자들이 많다.
상위 랭커에 도전하는 게이머 입장에서는 유료 과금모델(BM)이 부담이 될 가능성도 있다. 무기와 갑옷 등 장비에 박으면 추가로 능력치를 주는 '전설 보석'은 캐릭터의 성능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요소다. 그런데 전설 보석을 획득하기 위해 던전에 입장하려면 '문장'이 필요하다. 부담 없이 즐기는 입문자라면 게임 진행도에 따라 무료로 제공되는 문장으로도 충분하지만, 캐릭터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싶은 이용자라면 문장을 구매하기 위해 상당 수준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