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자립이 국가 미래 좌우한다" 미국·일본·중국· 유럽 전쟁 중

입력
2022.06.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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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AI·로봇·첨단기기 적용 범위 넓어져
반도체 수급 이상 생기면 '경제안보' 위협 걱정 커져
국가별 '반도체 자립' 위한 지원 총력전

"인공지능(AI)과 로봇, 자율주행 자동차 등 신기술 발전으로 반도체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반도체가 경제산업 분야 연결고리가 되고 있는 만큼, 반도체 자립화 전쟁도 치열합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

스마트폰과 AI, 로봇산업 등 4차산업의 발전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큰 변화를 겪으면서 반도체 자립을 위한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1970년대부터 빠르게 성장해 온 반도체 산업은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 일본, 대만 등 기술 선진국들이 서로 다른 분야에서 실력을 뽐내는 식으로 발전해왔다. ①미국은 반도체 설계(팹리스)와 장비 ②한국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③일본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④대만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정) 분야에서 전통의 강호로 불린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 적용 분야가 첨단 전자기기와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으로 확장됨에 따라 반도체 자급률이 국가 경제의 앞날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각종 산업 공정에 필요한 반도체의 해외 의존도가 높을 경우, 작은 양의 공급 차질도 자칫 경제 전반의 '도미노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안으로 현대·기아차 등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의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차량 판매량이 줄었다. 반도체 선진국들이 대대적으로 투자를 펼치며 반도체 산업 자립화를 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도체 패권전쟁'…반도체 지원 총력전

8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의 시작을 알린 미국은 반도체 투자 기업에 대한 세제 감면 등 인센티브 정책을 펼치고 있다. ①미국 의회는 2월 반도체 산업 생산력 증대를 위해 520억 달러(약 65조8,000억 원)를 쏟아붓는 '반도체 지원법'을 통과시켰다. ②유럽연합(EU) 역시 2030년까지 유럽 내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현재의 9%에서 20%로 높이기 위해 '유럽 반도체 지원법'을 논의 중이다. 이 법안은 유럽 내 반도체 산업 육성을 목표로 공공과 민간 영역이 각각 430억 유로(약 57조4,600억 원)를 투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③일본은 정부 보조금을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약 70% 점유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시장 공략에 나섰다. ④대만은 2019년 초부터 반도체 산업을 국가 핵심 전략으로 설정하고, 금융세제·인력 등 전방위적 지원책을 도입하고 있다. 특히 대만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53.0%를 차지하고 있는 TSMC를 중심으로 국가 반도체 산업 전체를 끌어가는 전략을 쓰고 있다.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선진국들은 반도체 자립률을 높여 자체적으로 반도체 생태계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설계부터 제조까지 잘개 쪼개진 반도체 산업에서 한 부문의 경쟁력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1월 국회에서 '반도체특별법(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을 통과시켜 반도체 산업 지원에 나섰다. 이 법안은 반도체산업을 '국가첨단 전략산업'으로 설정해 △인·허가 특례 △펀드 조성 △세액공제 △기반시절 구축비용 지원 등 갖가지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이다. 또 정부 예산 편성 우선권과 대규모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신속처리 및 면제 조항도 담았다.

삼성과 SK 등 대기업도 5년 동안 반도체 분야에만 442조 원을 쏟아부으며 TSMC가 주도하는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로 하는 등 민간 영역도 팔을 걷어붙였다. 다만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지원법 추진이 대만 등 선진국보다 조금 늦은 데다 경쟁력의 핵심인 인재 양성을 위한 정책적 뒷받침은 여전히 아쉽다"며 "예산 투입과 기업 투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제도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자립도, 인재 양성·강소기업 육성 절실"

업계는 한국만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 정부가 인재 양성과 강소기업 육성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우선 ①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를 풀어 반도체산업 전문 인력을 키울 여지를 확대하고 ②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등 중소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풀뿌리 전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시장에선 1위에 있지만 시스템 설계 분야 등에선 미국, 대만, 중국 등에도 밀리는 상황"이라며 "반도체 인재 양성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유기적으로 성장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내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 소부장 등에서 선진국을 추격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굴기'의 추격 대상이기도 한 만큼 실효성 높은 정책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한다. 실제 중국 정부는 2025년 '반도체 자립률 70%'를 목표로 화웨이, 칭화유니, SMIC 등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중국 정부가 최근 3년 동안 6개 반도체 기업 육성에 약 3조 원을 투입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다행히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5.9% 수준이며 2025년에도 20%를 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중국과 격차를 벌리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바람이다.



송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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